25일치 중앙일보 1면
1면 톱·2~5면·사설·칼럼 등 ‘대변지’로 나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국무총리 후보자에서 자진 사퇴한 가운데, 중앙일보가 그의 억울함을 대변하고 나섰다. 자사 출신의 문 전 후보자를 옹호하면서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 등 다른 후보자에 대한 검증 보도는 사실상 실종됐다.
중앙일보는 25일치 신문에서 “문창극 사퇴 … 민주주의 숙제 던지다”라는 제목의 1면 기사를 비롯해 2~5면과 사설, 칼럼 등을 통해 문창극 사태를 다뤘다. 1면에서 “법이 정한 절차인 국회 인사청문회가 무시된 채 여론 재판 끝에 총리 후보자가 사퇴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결정적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또, 2면에서 “국민의 눈·귀 속인 중대 범죄 … KBS는 개조 대상”이라는 제목의 머릿기사로 문 전 후보자의 교회 강연을 보도한 KBS를 정조준했다. KBS가 70분짜리 강연을 2분으로 “거두절미 왜곡”했다는 것이다. KBS의 후보 검증 보도를 “중대 범죄”라고 몰아붙였는데, 이는 이성적 반론과는 너무 거리가 먼 태도다.
특히, 기사 중간에 팩트가 틀린 대목도 있다. 이를테면 황근 선문대 교수(언론광고학부)가 “문제는 당사자 모르게 터트리는 건데, 쟁점이나 특정인의 신상과 관련된 보도는 당사자나 반대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KBS 취재진은 보도 당일 오후 문 전 후보를 두 차례나 직접 찾아갔고, 만남을 거부하자 문자 메시지도 남겼다. 문 전 후보자도 보도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또 문 전 후보자는 언론인 출신이기 때문에 검증 보도에 대해 협조하는 것이 상식에 맞다. 그러나 그는 “청문회에 가서 얘기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중앙일보는 또 KBS 심의실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장과 보도국장이 공석인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서” 보도가 이뤄졌다고 보도했지만, 당시 보도국장은 공석이 아니었다. 중앙일보는 “길환영 전 사장이 사퇴해 KBS는 리더십 공백 상태다”라고 기술했는데, 길 사장은 사퇴한 것이 아니라 해임됐다. 이밖에 같은 기사에서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는 “구약적인 해석을 거두절미해서 친일파로 몰아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으나, KBS 보도에는 ‘친일’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중앙일보는 3면에서 머릿기사로 “보수 후보 못 지킨 보수 정권 … 국정 운영 부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는 제목부터 편가르기식·정파적 사고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기사에서는 “박 대통령이 여론에 밀려 ‘보수 논객’인 문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막지 못한 것은 장기적으로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신뢰를 잃을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외치는 마당에 ‘보수 정권’, ‘보수 총리’라는 말로 스스로 영역을 좁히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4~5면에서 현행 청문회 제도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이들 기사에선 “국민의 뜻이란 이름으로 오도된 여론”이라면서, 과반의 국민 여론이 문 전 후보자의 자질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을 덮으려 했다. 또 “야당의 장외청문회”라면서 야당을 정조준했지만, 실제 이번 문창극 사태는 언론의 검증 보도와 악화된 국민 여론이 주요한 동력이었다. 야당은 인사청문회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중앙일보는 30면 사설(‘원칙을 지켜내지 못한 한국 사회’)와 이하경 논설주간의 기명 칼럼(‘문창극 사퇴로 우리가 잃은 것’)에서 문창극 사태를 “민주주의 위기”로 포장했다. “청문회 전 사퇴는 민주주의 퇴행”이라고 주장했는데, 논리적으로 일관적이려면 문 전 후보자가 청문회 자리에 서지 못한 직접적 이유를 제공한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했다.
중앙일보가 갑자기 민주주의 퇴행을 걱정하는 모습에, 문창극 전 후보자가 중앙일보 출신이 아니었더라도 이렇게 했을지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다. 많은 중견 언론인들은 이날치 중앙일보에 대해 ‘언론의 본분’을 이야기하기 전에 ‘품격’을 거론했다. 간혹 “<조선일보> 출신이 총리 후보자가 된다면, 조선은 더 영리하게 했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김효실 안창현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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