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표 언론인
“시민운동가는 비판이 그의 기능이다. 사회에서 소금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소금이 부패는 막지만 소금 자체가 간고등어는 될 수 없다. 사회운동이라는 것은 이미 있는 것에 대해 비판이나 개선 요구는 잘 할지 모르나…”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언론인 문창극씨가 <중앙일보> 재직 시절 썼던 ‘운동가는 제자리로’라는 칼럼(2003년 1월14일치)의 한 대목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시민운동권 출신들을 인수위원회에 참여시키고 있었던 것을 비판한 글이었다.
이 글에서 ‘시민운동가’를 ‘언론인’이라는 말로, ‘사회운동’을 ‘언론’으로 바꿔도 뜻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기자 역시 비판기능을 수행하는 사람들이고, 소금이 간고등어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언론인에게도 해당된다. 시민운동가는 안 되지만, 언론인은 괜찮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기자 출신이 정치에 투신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해 시비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자 출신으로 정치에 투신한 사람들 중에는 정치 쪽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한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 하는 시비도 실제로는 큰 의미가 없다. 대통령과 정권 핵심부에 포진한 인사들이 온통 합리적 보수의 선을 넘어 강경보수인데, 총리 한 사람의 보수 성향이 옅다거나 짙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여기서 내가 문제 삼는 것은 문 후보자의 주장에 일관성이 없고, 주장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인의 가치는 주장의 일관성과 행동의 일치에 있다. 이 부분이 무너지면, 그는 글을 영달의 도구로 삼는 글쟁이일 뿐, 더 이상 언론인이 아니다. 앞의 칼럼을 쓴 그가 총리 후보가 된 것은 주장과 행동의 불일치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문 후보자의 주장에 일관성이 없다는 사실은 그가 쓴 칼럼들을 통해 이미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그의 평가도 대통령 당선 전과 후가 180도 달라진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의원 시절의 ‘박근혜’를 비판한 칼럼을 들어, ‘쓴소리도 마다 않는 그의 강직성’을 말하는 이도 있지만, ‘쓴소리’는 ‘박근혜’가 권력의 핵에서 벗어나 있을 때의 일이다. 대통령 당선 뒤의 ‘박근혜’를 평가한 찬양일변도의 글을 읽어보면, 쓴소리했던 그와 찬양하는 그가 동일인인가 하는 의심이 생길 정도다.
언론인으로서의 문 후보자의 참모습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사례가 나왔다. 2011년 용산의 한 교회에서, 우리가 일본 식민지가 된 것과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 그의 강연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한국방송>(KBS)이 11일 밤 뉴스시간에 내보낸 것이다. 이것은 그의 역사의식에 근본적인 고장이 났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문 후보자는 후보자로 지명된 지 불과 2~3일 만에 일관성 없는 주장과, 말과 행동의 불일치, 그리고 극심한 역사의식의 빈곤을 드러냈다. 이것은 정치적 성향이 보수냐, 진보냐를 넘어,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로서뿐만 아니라, 언론인으로서도 실격 판정을 받을 일이다. 따라서 일부 언론이 그를 설명한 ‘정통 기자 출신’이라는 표현은 사실과는 달리, 언론인이 대체로 그처럼 줏대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위험이 있다. 정치 쪽으로 뛰어드는 기자 출신들에게 붙이는 ‘폴리널리스트’라는 빈축도 그에게는 과분하다.
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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