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의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새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5일 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 앞에서 열린 파업승리 보고대회에서 길환영 사장 해임 제청안의 이사회 가결에 환호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KBS 길 사장 해임안 가결 이후]
청와대와 부적절한 관계 드러나며
두 노조·간부진 보직 사퇴 등 고립
특별한 이유 없으면 해임 절차
이참에 사장 선임 방식 바꾸어야
구성원·학계 ‘특별 다수결제’ 거론
외압설 진상·책임자 문책 등도 숙제
청와대와 부적절한 관계 드러나며
두 노조·간부진 보직 사퇴 등 고립
특별한 이유 없으면 해임 절차
이참에 사장 선임 방식 바꾸어야
구성원·학계 ‘특별 다수결제’ 거론
외압설 진상·책임자 문책 등도 숙제
길환영 <한국방송>(KBS) 사장 해임 제청안의 이사회 통과는 두 노조와 간부진, 직능별 협회 등 구성원이 똘똘 뭉쳐 ‘방송 독립’을 요구해 이룩한 ‘성과’라는 점에서 한국 방송사에 기록될 일이다. 그러나 길 사장 퇴진 이후에도 ‘청와대 낙하산’이 재현될 수 있어, 새 사장 선임 과정이 더 험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똘똘 뭉친 한국방송 구성원들 이번 케이비에스 사태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사석 발언이 촉매가 됐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견줬다는 발언이 알려지면서 한국방송 등의 세월호 보도에 대해 쌓였던 유족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유족들은 지난달 9일 청와대 앞에서 밤샘 시위를 벌였고, 김 전 국장은 이날 보직 사퇴했다. 그러면서 길 사장의 보도 통제 사실을 ‘폭로’했다.
청와대와 한국방송의 ‘부적절한 관계’가 내부자에 의해 맨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이에 한국방송 기자협회의 제작거부를 시작으로, 양대 노조의 파업, 부장과 팀장 등 간부진 300여명의 보직 사퇴가 이어지면서 길 사장은 사면초가에 몰렸다. 5일 이사회에서 일부 여당 추천 이사들이 길 사장 해임 쪽으로 돌아선 것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방송 한 이사는 “표결 전까지 이사들 사이에 격론이 오갔고 부결될 것으로 봤다. 결과가 나오고 크게 놀랐다. 누가 찬성표를 던졌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사회 의결로 일단 공은 청와대로 넘어갔다. 방송법상 한국방송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원칙적으로 ‘면직’ 규정은 없다. 하지만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방송 이사회의 정연주 사장의 해임 제청안을 받아들여 이사회 통과 3일 만에 해임한 바 있다.
■ 혹시, ‘제2의 길환영’? 문제는 다음 사장으로 누가 오느냐이다. 이번 사태가 ‘청와대 외압’에서 출발했고, 한국방송 구성원의 요구가 ‘방송 독립’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청와대의 의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지만, 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 한 번도 이 문제와 관련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에 시험대에 오르는 셈이다.
한국방송 구성원들뿐 아니라 학계에선 이번 기회에 ‘제2의 길환영’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사장 선임 제도 자체를 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한국방송 사장 임명은 이사회가 공모로 후보자 지원을 받아 면접을 통해 최종 1명을 뽑아 대통령한테 제청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이사회는 정부·여당 추천 7명, 야당 추천 4명 등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실상 정부·여당이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다. 말 잘 듣는 사람을 사장으로 앉혀 영향력을 행사할 창구로 삼기에 안성맞춤인 셈이다. 길 사장도 2012년 ‘사전 내정설’이 도는 가운데 양대 노조의 반대에도 정부·여당 추천 이사 6명의 찬성으로 최종 후보에 올랐다. 한국방송 안팎에선 벌써부터 청와대가 후임 사장을 점찍어 놓고, 6·4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해임 제청안을 통과시켰다는 얘기가 돌았다.
학계·시민사회에선 제도적 대안으로 ‘특별다수제’가 많이 거론된다. 특별다수제는 사장 선임 등 중요 안건의 경우 일반적인 다수결이 아닌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는 언론학자들 사이에서도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동의하는 제도다. 보수 성향의 윤석민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는 “특별다수제에 진작부터 찬성하는 입장이었다”며 “프랑스, 독일 등 외국에서 공영방송 사장 선임 절차와 의결정족수를 대체로 우리보다 엄격하게 만든 것은 정치세력 간 견제와 균형을 제도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미디어학부)도 “(특별다수제가) 이사회 구성 자체의 정파성을 해체하지는 않아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관련자 대다수가 이미 합의해 현실적 대안인 건 사실”이라고 했다.
■ 정상화에 상당한 진통 예상 제도 개선과 별도로 그동안 청와대가 한국방송을 통제해 왔다는 의혹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 장영주 전 책임피디(CP) 등 내부 간부들의 폭로가 대단히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김 전 국장은 국회의 세월호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나가 청와대 외압 사실을 증언하겠다는 의사도 이미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강성남 위원장은 “국정조사 과정에서 청와대 외압설의 진상을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 임명되는 사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는 점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달 28일 공표된 개정 방송법에는 한국방송 사장의 인사청문회 도입 조항이 새로 들어갔다. 개정안 공표 3개월 뒤인 8월 말부터 법이 시행되므로, 그 뒤에 지명된 사장 후보자는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강형철 교수는 “현시점에선 야권에서 거부감 없는 중도적 인사를 골라야 하고, 여야 및 한국방송 구성원들이 이렇게 선출된 사장의 리더십을 지켜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효실 이정국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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