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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대상 범죄보도 ‘2차 피해’ 막으려면…“인격권 보호 우선”

등록 2014-04-17 19:50수정 2014-04-17 20:55

언론인권센터와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지난 10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언론보도 2차 피해, 이제는 끝내야 한다’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언론인권센터 제공
언론인권센터와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지난 10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언론보도 2차 피해, 이제는 끝내야 한다’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언론인권센터 제공
‘나주 아동 성폭행 사건’ 피해자쪽
언론사 5곳 상대 손배소에서 이겨
법원 “집 내부·아이 일기장 공개는
불필요한 사생활 침해로 불법”
지난 2012년 여름,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7살 어린이가 집안 거실에서 잠을 자다가 이불째 납치된 뒤 20대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뻔한 끔찍한 일이다. 가해자는 올해 초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았다. 또 다른 ‘가해자’가 있었다. 언론의 선정적·자극적 보도는 급기야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상처를 덧내고 피해를 키웠다.

■ 피해자 쪽, 언론사 상대 소송에서 이겨 피해자와 가족들은,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을 지원하는 비영리민간단체인 ‘언론인권센터’와 함께 같은해 9월 신문·방송·통신사 5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언론이 피해자와 가족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재판장 배호근)는 지난달 19일 ㄱ신문사, ㄴ방송사, ㄷ종편사에 대해 각각 2500만원, 3000만원, 2300만원을 피해자와 가족에게 지급하고, 관련 기사들을 인터넷 누리집에서 모두 삭제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 보도는) 전례 없이 잔혹한 해당 범죄의 원인을 분석해 비슷한 범죄의 재발을 막아야겠다는 공익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도, “(언론이) 공익적 목적과 공적 관심만 지나치게 부각해 그런 보도로 인해 피해자 쪽의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에 대해 세심하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원고 쪽이 주장하는 명예훼손·사생활 침해에 대해 항목별로 판단을 내렸다. 먼저, 재판부는 집에 대해 “사생활 중 매우 내밀한 영역”이자 “원고들이 타인에게 굳이 공개하고 싶지 아니한 것”이라고도 판단했다. 그래서 피해자의 집 위치를 위성 사진이나 외부 사진 등으로 드러내거나, 집 내부를 찍은 사진·영상을 보도하는 건 사생활 침해이자 ‘불법 행위’라고 봤다.

개인 기록물도 대부분 사생활의 영역으로 봤다. 피해 어린이의 상해 흔적을 촬영한 사진과 그림일기장 같은 개인기록물 사진, 친구들과 찍은 사진 등을 공개하는 것도 사생활 침해이자 불법 행위로 봤다. 모자이크 처리도 소용없었다. 재판부는 이들에 대해 “범죄의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공개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니다”고 못박았다. ‘엄마는 게임광’, ‘아빠는 술을 많이 마셔’, 월수입 등의 정보 제공도 명예훼손이자 불법 행위로 판단됐다.

■ 국민의 알 권리 vs 개인 인권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보다 개인의 인권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게 재판부 판단의 핵심이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공적 사안에 해당하더라도, 원고들은 범죄 피해자로서 사적 인물일 뿐”이라며 “설령 일반 대중의 정당한 관심사에 포함되더라도 그 관심이 원고들의 인격적 이익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언론 보도가 원천봉쇄된 것은 아니다. 피해자의 집 내부 구조 그림은 사생활 침해에 해당하지만,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에 포함돼 보도가 가능하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김종호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언론의 사생활 침해 논란에 대해 인격권의 우선성을 엄격하게 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평가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이번 판결이 기자들의 취재 지침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언론인권센터는 관련 소송들이 마무리되면, 판결 내용을 참조해 사생활 침해 관련 가이드라인이나 인권수첩을 만들 계획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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