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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묻지 마세요, 지켜주세요’

등록 2014-04-13 19:44수정 2014-04-14 08:53

일러스트레이션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범죄 피해 아동 보도 ‘인권 침해’ 논란
“애 괴롭혀서 얻은 정보 하나도 안 반갑습니다”(아이디 s****)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인식에 자극을 주려는 것은 이해하나, 디테일한 사생활까지 까발리는 게 언론의 제기능인가 의문도 갖고요.”(아이디 @j******)

지난 12일치 <한겨레> 1·3·4면에 실린 경북대 소아정신과 정운선 교수의 인터뷰 기사 아래 달린 댓글이다. 정 교수는 ‘칠곡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피해자 중 언니의 주치의로, 인터뷰에서 ‘2차 가해’와 다를 바 없는 언론의 무리한 취재 행태를 질타했다.

일부 언론은 피해 어린이가 다니던 학교와 머무는 공간을 찾아가 직접 인터뷰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관계자는 취재진이 피해 어린이 친구들에게 말을 걸어 피해자의 신상이 노출할 위험에 처하도록 했다고도 했다.

한 일간지는 아이가 머무는 곳의 위치를 구 단위까지 밝혔다. 결국 이 아이는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다.

<한겨레> 역시 12일치 지면 보도에서 피해 어린이의 거처를 언급해 기사 수정을 요청받기도 했다.

언론의 아동학대 보도를 둘러싼 논란은 이전부터 있었다. 공익과 알 권리 보장을 앞세운 언론의 무리한 보도에 피해 어린이의 개인 정보가 노출된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2년 전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 초기에 피해 어린이가 사는 집의 위치 정보가 언론에 의해 노출됐다. 가해자의 범행경로를 시간대별로 알려준다는 명목이었다.

한 일간지는 항공사진까지 동원했다. 아동의 상태를 전하면서 신체부위의 손상 정도, 치료 상황 등을 자세하게 특정하고 묘사해 지나치게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결국 피해자 가족들은 언론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고,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2011년 장애아동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개봉되고 화제가 되자, 공부방·그룹홈 등에서 거주하는 피해 어린이들이 언론의 ‘밀착취재’로 고통을 받았다. 해당 사건 대책위원회에서는 “(언론의) 과도한 관심으로 피해 학생·가족들의 아픈 기억이 되살려지고 있어 우려된다”며 취재를 거부하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아동의 사생활 및 인격·존엄성에 대한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낮은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한다.

언론들 ‘칠곡 사건’ 과잉 취재
피해 아동 무작정 찾아 인터뷰 시도
무리한 행태에 심각한 ‘2차 피해’

‘나주 성폭행 사건’도 다르지 않아
집 항공사진·신체 손상 정도 노출
법원, 해당 언론사에 손해배상 판결

전문가들 “자세한 묘사 큰 문제…
아동학대 보도준칙 별도 마련을”

2011년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함께 만든 ‘인권보도준칙’은 범죄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도록 했다. 아동 인권에 대해선 ‘언론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안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세심하게 배려한다’고 명시했다.

전문가들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좀더 상세한 아동학대 관련 보도 준칙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영국의 방송통신규제기구인 ‘오프콤’에서는 18살 미만 아동·청소년과 관련한 범죄 보도에서 가해자 정보를 포함해 피해 어린이의 신상 노출과 관련한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온라인 시대에 단편적 정보들을 짜맞춤으로써 피해자의 신상이 노출되는 ‘직소(jigsaw·조각그림)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아동인권 엔지오들이 모여 만든 ‘아동권리에 관한 국제 네트워크’(CRIN)가 마련한 가이드라인을 보면, 아동의 신원 정보를 드러낼 경우 이 때문에 아동이 어떤 피해를 입거나 공동체에서 낙인찍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동과 인터뷰할 때는 아동 또는 보호자가 대화 상대가 기자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도록 하며, 인터뷰의 목적과 사용범위를 설명해야 한다고도 했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우리 보도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 개인에 대한 정보가 너무 많이 공개되고 학대 방법과 수단이 지나치게 자세하게 묘사된다는 점이다”며 “피해 아이가 ‘잊혀질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며, 다른 위기 가정에서 학대를 학습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나주 어린이 성폭해 사건 판결을 참조해서 어린이를 포함한 사생활 침해와 관련한 보도 가이드라인 제작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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