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증거조작으로 얼룩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과 관련해 <조선> 등의 ‘과잉 보도’ 논란이 벌어졌다. 탈북자 ㄱ씨가 “비공개 재판에서 증언한 사실이 북한에 알려져 가족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는데, 이를 지나치게 자세히 보도해 북에 남은 식구들이 더 위험해졌다는 것이다.
2일 검찰과 법원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탈북자 ㄱ씨는 지난해 12월 이번 사건 항소심 비공개 공판에 검찰 쪽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했다. 그는 이어 지난 1월 탄원서에서 “북한에 살고 있는 자녀가 국가안전보위부 사람들에게 조사·협박을 받았다. (비공개 증언 유출에 대한) 정확한 조사를 원한다”고 했다.
<문화일보>와 <조선일보>는 각각 1, 2일치 1면 등에서 이를 상세히 보도했다. 문제는 이들 신문이 ㄱ씨의 탄원서 전문을 공개하면서 ㄱ씨가 북한의 딸(24)과 전화 통화한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 것이다. ㄱ씨는 탄원서 말미에 “정보 유출자를 찾아 엄중히 처벌하였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북의 자식들이 저와 통화한 것이 밝혀져 처벌받을 것 같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북의 딸이 남한 주민과 불법적으로 통화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사실을 우리 언론이 확인해 준 셈이다.
또, <조선>은 “일각에선 (증언 내용이) 유우성씨의 변호인단 쪽에서 새나간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변호인단을 지목했지만, 변호인단 쪽의 반론을 싣지 않았다.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중앙>은 이날 “우린 ㄱ씨의 인적 사항도 모른다”고 말한 변호인단 반론을 실었다.
유씨의 변호인단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통일위원회에서는 2일 보도자료를 내어 “정보를 유출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ㄱ씨가 이를 노출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자발적으로 제출하고 언론에까지 노출한 행위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조영수 민주언론시민연합 대외협력부장은 “언론이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다뤘다. ㄱ씨 가족의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도 “이번 보도로 재북 가족에게 또 다른 불이익이 생길 수 있고, 유출자를 찾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굳이 왜 이 시점에서 보도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조선> 쪽은 “유우성씨와 직접 통화해 입장을 실었다”고 했고, <문화> 쪽은 “편집회의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고 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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