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석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
미디어 전망대
요즘 기사를 읽다 낯이 뜨거워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탈자, 주어가 없는 문장, 비실명 취재원, 근거 없는 추측 보도, 전문성 없는 해석,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 확인 없이 쓴 기사 등 기본기를 갖추지 못한 기사들이 범람하기 때문이다. 기자 노동의 강도가 높은 인터넷신문과 종합편성채널 뉴스를 볼 때 특히 그러하다. 이 같은 기사 품질의 저하는 기자 노동의 질적 하락과 맞닿아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탈숙련화 현상과도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기자라는 직업은 문필가나 정치인으로부터 분리된 이후 끊임없는 노동의 분화과정을 거쳐 왔다. 취재기자, 편집기자, 사진기자, 교열기자 등 기능에 따른 직종 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직능의 다양화와 분화는 중간관리층을 발달시켜서 데스킹과 같은 게이트키핑 단계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직능별 전문 능력을 특화시켰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은 100여년의 기자 노동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기자들만이 정보를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경쟁 상황은 ‘융합’이라는 이름 아래 조직간 통합과 직능간 결합을 유도하고 있다. 복수의 부서에서 하던 업무가 기자 한 사람에게 통합적으로 요구되면서 충족시켜야 하는 기능이 많아졌다. 사내 정보통신망은 관료적 중간관리층의 역할을 줄이고 있다. 급속한 조직 구조 변화와 중간관리층의 역할 축소는 데스크 기능의 약화와 중년 기자들의 조기 은퇴로 나타나고 있다.
웹, 모바일, 아날로그 매체 등 매체의 증가는 기자 한 사람이 소화해야 할 기사 양의 증가를 의미한다. 이는 취재와 기사 작성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에서 ‘복사와 붙여넣기’로 기사를 작성하고 ‘네티즌 의견’으로 독자 반응을 손쉽게 처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검증을 위한 노력의 기회들이 줄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기회 역시 그러하다. 한국 언론사들은 숙련을 위해 일종의 도제 교육 방식을 운영해 왔다. 수습기자부터 시작되는 숙련화 과정은 많은 비용을 요구한다. 그러나 다수의 중소 언론사들이 이러한 고비용 방식에서 외부 시장에서 인력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주요 언론사들 역시 기자 교육에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스폿 수요’라는 일시적 고용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비정규직 기자들을 양산하고, 타 매체와의 기사 제휴로 콘텐츠를 부풀리는 왜곡된 고용과 생산 체계가 만들어지고 있어 씁쓸하다.
이 같은 조건의 변화는 기자 노동의 탈숙련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기자라는 직업은 의사나 변호사와 유사한 전문직으로 분류된다. 전문직의 특성은 자기 노동에 대한 통제력이 높고, 업무가 전문 기술을 요구하며, 사회적으로 높은 책임이 부여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기자들은 탈숙련화되고, 자기 노동에 대한 통제력이 줄어들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열악한 조건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날로그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일단의 연구들은 디지털 기술이 단순노동직과 다르게 지식노동직에 유리한 숙련 편향적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기자들의 역할 조정과 능력 개발이 기술 환경에 맞게 잘 이루어진다면 디지털 기술은 오히려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의미다. 우리 언론들은 외부세계에 대한 감시에만 치중하지 말고 이 새로운 기술 환경이 변화시키는 내부의 인적자원에 눈을 돌릴 때다.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기자 노동을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황용석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