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희 전 여성부장관
“국민이 기왕 만들어놨으면 책임도 함께 져서 아름답게 성장시켜야죠. 세계적으로 이런 신문이 어딨어요? 〈한겨레〉도 사회를 바꾸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자기확신을 가져줬음 좋겠어요.”
한겨레 사람들, 사회 바꾸려는 신념지녀
진보적 이슈 꾸준히 던지지만 깊이 부족 분명하고 빠른 일처리 때문에 ‘지칼’이라는 별명을 얻은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 퇴임 뒤 상지대 교수(여성학)로 숨돌릴 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최근 한겨레 발전기금으로 200만원을 냈다. 그는 한겨레 구성원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몇차례나 강조했다. “한겨레를 처음 만났을 때의 떨림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입을 뗀 그는 1988년 창간 당시에도 “너무나 가난해 ‘소액주주’로 동참했다”고 전했다. 여성단체와 각종 시민단체의 대표로 일하고 여성부 장관까지, 엔지오와 정부의 고위직을 두루 거친 그의 눈에 비친 〈한겨레〉는 어떤 모습일까. “한겨레는 진보적인 이슈를 사회에 알리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여성 문제만 보더라도 사설과 지속적인 여성면을 통해 여성에 대한 현실과 인식을 확실히 심어줬지요.” 지 전 장관은 총선시민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여성단체연합 등 각종 시민사회단체의 대표를 맡았을 때부터 한겨레 기자들을 눈여겨보았다고 한다. 사석에서는 진보와 민주화에 대해 속깊은 토론을 벌이면서 한겨레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부터 사회를 바꾸려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덧붙였다. 98년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시대에는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에서 한겨레에서 파견된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하기도 했다. “한겨레 사람들에게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실업극복을 하려고 한겨레가 앞장서 국민 모금을 하고, 유능한 직원들을 골라 위원회에 파견했습니다. 그 안에서도 한겨레는 자신들의 이익과 주장을 전혀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겨레 창간 뒤 17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의 진전은 있었지만 “아직 사회의 목표인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는 모자란다”고 말했다. 지금은 모두가 다 행복한 사회로 가려는 과정일 뿐, 민주화의 궁극적인 결과물은 아니란 얘기다. 여성부 장관 시절 ‘욕심이 많다’는 비난 아닌 비난을 들었던 그는 사회 민주화와 평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 욕심을 절대 줄일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한겨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당부할 얘기가 많았다.
“한겨레가 낡은 건 아닌데, 진보적 시각의 깊이가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6자 회담이나 생명공학의 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분명한 시각이 필요합니다. 한겨레의 처음 생각대로 나무를 심어가다 보면 숲이 되고, 그 숲에 독자가 오는 거 아니겠어요?”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진보적 이슈 꾸준히 던지지만 깊이 부족 분명하고 빠른 일처리 때문에 ‘지칼’이라는 별명을 얻은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 퇴임 뒤 상지대 교수(여성학)로 숨돌릴 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최근 한겨레 발전기금으로 200만원을 냈다. 그는 한겨레 구성원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몇차례나 강조했다. “한겨레를 처음 만났을 때의 떨림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입을 뗀 그는 1988년 창간 당시에도 “너무나 가난해 ‘소액주주’로 동참했다”고 전했다. 여성단체와 각종 시민단체의 대표로 일하고 여성부 장관까지, 엔지오와 정부의 고위직을 두루 거친 그의 눈에 비친 〈한겨레〉는 어떤 모습일까. “한겨레는 진보적인 이슈를 사회에 알리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여성 문제만 보더라도 사설과 지속적인 여성면을 통해 여성에 대한 현실과 인식을 확실히 심어줬지요.” 지 전 장관은 총선시민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여성단체연합 등 각종 시민사회단체의 대표를 맡았을 때부터 한겨레 기자들을 눈여겨보았다고 한다. 사석에서는 진보와 민주화에 대해 속깊은 토론을 벌이면서 한겨레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부터 사회를 바꾸려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덧붙였다. 98년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시대에는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에서 한겨레에서 파견된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하기도 했다. “한겨레 사람들에게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실업극복을 하려고 한겨레가 앞장서 국민 모금을 하고, 유능한 직원들을 골라 위원회에 파견했습니다. 그 안에서도 한겨레는 자신들의 이익과 주장을 전혀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겨레 창간 뒤 17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의 진전은 있었지만 “아직 사회의 목표인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는 모자란다”고 말했다. 지금은 모두가 다 행복한 사회로 가려는 과정일 뿐, 민주화의 궁극적인 결과물은 아니란 얘기다. 여성부 장관 시절 ‘욕심이 많다’는 비난 아닌 비난을 들었던 그는 사회 민주화와 평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 욕심을 절대 줄일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한겨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당부할 얘기가 많았다.
“한겨레가 낡은 건 아닌데, 진보적 시각의 깊이가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6자 회담이나 생명공학의 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분명한 시각이 필요합니다. 한겨레의 처음 생각대로 나무를 심어가다 보면 숲이 되고, 그 숲에 독자가 오는 거 아니겠어요?”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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