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미디어 전망대
민주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국가 정보기관의 대통령선거 개입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전국으로 확산돼 가고 있다. 대학생·교수·시민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천주교 사제단까지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항의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검찰이 국정원의 선거 개입 증거를 포착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했고, 국회에서 그 진상을 규명하는 국정조사가 진행중이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은 박근혜 후보를 내세운 새누리당까지도 그 심각성을 인정하고 국정원 개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건이다.
그런데 이런 국정원의 행동을 비난하기는커녕 국정원 선거 개입 규탄을 “국가보위 최고 정보기관을 무력화하는 행동”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신문 광고가 연거푸 보수 언론을 대표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지면에 실리고 있다. 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다.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비판하는 사회 지도층을 “반(反)국가 종북세력”이라고 낙인찍고 이들을 “대척결”하는 “국민대회”에 참석할 것을 촉구하는 광고다. 60년 전 한국전쟁 중 임시 수도 부산에서 국민의 반대에 봉착한 이승만 독재정권을 옹호하고 민주 세력을 공격하는 전단을 뿌린 땃벌떼와 백골단을 연상케 한다.
표현의 자유가 기본권인 민주국가에서는 누구나 신문에 의견광고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광고 윤리는 지켜야 한다. 규제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불법행위를 찬양하거나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증오 발언을 금하고 있는 것이 언론 윤리다. 지금 언론은 도처에서 사회를 통합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증오 언론’의 역기능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국언론노조가 발행하는 <미디어오늘>의 신문윤리강령도 저속한 표현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제11조). 2011년 11월 유럽평의회의 의뢰로 국제기자협회 전 사무총장 에이던 화이트가 작성한 언론 지침서 <윤리적 언론과 인권>도 제3장에서 언론의 증오 발언이 아프리카와 발칸 분쟁에서 엄청난 대학살을 초래하고 적대 세력이 사회를 갈라놓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증오 발언의 절제를 강조하고 있다.
대한재향경우회의 ‘반국가 종북세력 대척결 국민대회’ 광고(동아일보 7월26일치)나 애국단체총연합회의 ‘반역세력 심판 8·15국민대회’ 광고(조선일보 8월13일치)는 대표적인 증오 광고의 인상을 준다. 이들 광고는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비판하는 민주 세력을 “반국가 종북세력”이라고 낙인찍었다. 마녀사냥이다. 민주주의를 반공보다 중시하는 국정원 선거 개입 비판자들을 “대북정보 기능을 무력화시키려는 우리 내부의 적”이라고 지칭하고 “도려내자”고 주장한다. “반역세력은 심판”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광고를 게재한 신문의 태도다. 이러한 광고를 게재하고 안 하고는 신문의 자유다. 따라서 언론 윤리에 어긋나는 증오 광고를 게재했다면, 선거 개입은 따지지 않고 “치열한 정보전쟁시대에… 국가안보와 헌법 수호 의무를 수행하는 국가정보원을 지켜내자”는 광고를 게재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신문의 책임이다.
국정원 사건은 검찰이 유죄의 증거를 갖고 기소한 범죄 사건이다. 그동안 두 신문이 국정원 선거 개입 보도에 계속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검찰이 기소까지 한 행위를 옹호하는 광고를 게재한 것은 언론 윤리에 크게 어긋나는 것 아닌가?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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