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간부 몇 명이 발행하고 있는 ‘비정상적’ <한국일보>의 주필이 지난주 “신문에서 언론의 자유는 곧 자본주의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 기자와 자본주가 힘을 합쳐 권력과 싸워가며, 나중에는 기자들이 권력에 유착·순응한 자본주와 다시 싸워가며 얻어낸 것이 언론자유의 역사라는 사실을 외면한 독특한 글이다. 더구나 주필이라면 자본주가 임명했겠지만 여전히 자본주가 아닌 기자로서 편집 내용에 책임을 지는 사람일 터인데 기자 스스로가 신문 자유의 본질은 자본주의 것이라고 주창하니 참 놀랄 일이다.
지난 4월 <한국방송>(KBS)에서도 자사 기자협회장이 보도 공정성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편집권의 독립을 훼손했다며 보도본부 간부들이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의 성명은 “보도 및 편집에 관한 책임을 지고 있거나 그로부터 위임받은 책임자 외의 어떤 내·외부도 편집권의 독립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공영방송사 기자 대표가 자사 보도에 대해 문제제기 한 것을 편집권 침해라고 보는 것도 이상하지만 아무리 회사가 임명한 간부 기자들이더라도 편집권이 사쪽에서 비롯된다고 버젓이 주장하는 것은 더욱 놀라웠다.
‘편집권’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주로 쓰는 용어로서 언론 내용을 결정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나타내고자 하는 말이다. 그러나 편집권 개념은 경영권과 같은 맥락으로 오해되고 악용될 소지 때문에 언론사 내부의 언론자유, 곧 ‘내적 언론자유’나 ‘편집의 독립성’이라는 말들이 더 적절하다. 언론자유라고 하면 본래 외부 권력에서 독립된 언론 기업의 자유, 곧 ‘외적 언론자유’를 의미해왔다. 그러나 언론이 대기업화·독점화하고 발행인의 정치·경제적 이해 추구 행위가 건전한 여론 형성 기능을 훼손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내적 언론자유 개념이 등장하게 됐다. 1970년대 영국 <왕립언론위원회 보고서>도 언론은 소유 집중과 독점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편집의 독립을 보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한국에서는 1966년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내적 언론자유 문제를 처음으로 부각하였다. 당시 삼성그룹 내의 <동양방송>과 <중앙일보>가 이 사건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다른 언론을 역으로 비판하고 나서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에서는 ‘외적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내적 언론자유’가 발전했다. 발행인이 정치권력에 유착·순응하는 현상에 기자들이 저항하고 희생하며 언론자유를 지켜온 것이다. 1974년 동아투위, 1980년 언론 통폐합 등 일련의 사건에서 발행인들은 정권의 요구에 순응 또는 편승했다. 정권의 직접 관리를 받는 공영방송사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인들은 편집국장 추천제 등 내적 언론자유의 제도화에 힘썼다. 2000년에 제정한 방송법에는 방송사가 방송 실무자들과 편성 규약을 만들어 내적 언론자유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였다. 2005년에는 신문법에도 비록 강제 규정은 아니지만 편집 규약 조항을 신설했다.
편성 또는 편집 규약은 방송사와 제작진, 발행인과 기자가 별 유용성 없는 ‘편집권’ 개념으로 싸우지 않고 권한과 책임을 분담하고 공유하게 하는 매우 선진적인 내적 자유 실천방안이다. 많은 서구 언론들도 편집 규약을 만들어 지키고 있다. 각고의 세월 끝에 만들어 놓은 지혜의 산물을 없애버리려는 움직임이 최근 눈에 띈다. 탈레반이 불상 유적을 파괴한 것처럼 유사 자유주의 교조를 암송하는 사람들이 귀한 사회 유산을 마구 부수려는 것이 안타깝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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