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 수신료 인상안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취임 이후 줄곧 ‘수신료 현실화’를 역설해온 길환영 한국방송 사장에 이어 최근 취임한 이경재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이 수신료 인상 필요성을 거듭 밝히고 나섰다.
방통위는 1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수신료 인상안이 포함된 공영방송 재원 구조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4선 의원 출신인 이경재 위원장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활동 때에도 30여년간 동결된 수신료의 ‘현실화’를 강조해왔다. 그는 22일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도 “1981년에 2500원으로 결정이 된 수신료는 이제 좀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 대신 한국방송 2텔레비전이 공영방송인데도 민영방송보다 더 저질인데, 광고 경쟁에서 탈피하기 위해 광고를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인상 폭과 시기는 한국방송의 경영 비용과 구조 개선, 광고 삭감과 연결된 문제라며 “일단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 때에도 국회에서 수신료 1000원 인상안이 추진됐지만 시민사회가 반대하고, 한국방송 기자가 이 문제와 관련해 민주통합당 대표실을 도청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무산된 바 있다.
수신료 관련 발의권은 한국방송 이사회에 있다. 인상안은 방통위를 거친 뒤 국회 승인을 얻어 확정된다.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최종 의견 제출 권한이 방통위원장에게 있다는 점에서 이 위원장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 위원장의 입장에 대해 한국방송 이사회 안에서도 이사회의 권한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야당 추천을 받은 김주언 이사는 “이사회에선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없다. 봄 개편 때 현대사 왜곡 논란이 제기된 <다큐극장> 강행으로 시민단체의 반발이 잇따르고 있는데, 공정 보도와 경영 합리화 등 전제 없이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방통위원장이 인상안을 먼저 들고나오는 것은 한국방송을 길들이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공정성 회복 뒤 수신료 인상’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일 낸 논평에서 “친정권 홍보 방송으로 전락한 한국방송은 정치적 독립과 공정성·공영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수신료 인상은 꿈도 꾸지 말라”고 밝혔다. 김한중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도 “수신료 인상은 필요하다고 보지만 공공성 담보, 투명한 지배구조, 편성·제작 자율성 등의 보장 장치가 전제되지 않는 한 불가하다”고 말했다.
30여년 동결했으니 올려야 한다는 견해에 반론도 있다. 방정배 방송독립포럼 공동대표는 “월 2500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부실 경영은 없는지 투명하게 공개해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숙 가천대 교수도 “‘30여년간 동결’이란 표현도 1980년 800원이었던 시청료가 81년 2500원으로 무려 312%나 급등한 ‘폭압적 인상’이었음을 고려할 때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는 “보도의 공정성과 프로그램의 다양성, 시대정신과 가치를 담는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를 위해 수신료 인상에 국민의 동의를 얻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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