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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사람 잘 챙기고 장사는 잘했는데 공영성은 막장

등록 2012-05-25 21:34수정 2012-05-25 22:18

문화방송 노조 신정수 피디가 지난 8일 낮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문화방송 노조 신정수 피디가 지난 8일 낮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MBC 사장 김재철을 말한다
김재철 사장은 1979년 12월 <문화방송>(MBC) 공채 14기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사회부·정치부 기자, 도쿄 특파원, 보도제작국 국장 등을 거쳐 울산 문화방송 사장, 청주 문화방송 사장 등을 역임했다.

방송사 기자 시절의 김 사장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언론인보다는 폴리널리스트(정치와 언론인의 합성어)에 가까웠다’는 쪽이다. 김 사장의 고교(서울 대광고등학교) 동기인 강기석 전 신문유통원장은 그에 대해 “30년 넘게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김재철’이라는 친구를 거의 잊고 지냈는데,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비로소 그 이름을 다시 들었다”고 말했다. 강 전 원장은 김 사장보다 2년 먼저 <경향신문>에 입사했다. 서울 중구 정동 시절의 문화방송은 경향신문과 신입기자를 함께 선발하는 한 회사였다.

“출마할 때 경력 쓰게 정치부장 시켜줬으면”
“요샛말로 하면 존재감이 없는 기자였다. 같은 폴리널리스트라도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나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기자로도 나름대로 이름을 알린 편이었다면, 그는 기자로서의 뚜렷한 이력이 없었다.”

신경민 민주통합당 당선인이 기억하는 ‘김재철 선배’는 정치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기자였다. 신 당선인은 공채 15기로 김 사장보다 두 해 늦게 입사했다. “사람은 참 좋다. 보통 허허 웃는 사람이었는데, 정치에 입문하기를 굉장히 원했다. 술자리에서 출마할 때 경력으로 쓸 수 있도록 정치부장, 보도국장을 하루라도 시켜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김 사장이 1995년 민선 1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휴직계를 내고 고향인 경상남도 사천시에 내려가 1년 가까이 머물다가 회사로 복귀했던 사실은 문화방송 안팎에 많이 알려져 있다.

김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워진 것은 정치부 기자 시절이었다. 김 사장은 문화방송 입사 12년 만이었던 1992년 처음으로 정치부에 배치됐다. 올해처럼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졌던 그해, 여당 반장 기자였던 김 사장은 당시 이명박 민주자유당 전국구 의원을 처음 만났다. 그때 총리실과 외교부를 출입하던 신경민 당선인은 이 대통령과 김 사장이 정치인과 기자이기에 앞서 고려대 선후배였다고 돌아봤다.

“당시 정치부장이던 구본홍(전 와이티엔 사장)을 포함한 문화방송 정치부랑 민자당 초선의원들이 회식을 하는데 김 사장이 직접 이 대통령을 챙겼다. 이 대통령과 김 사장이 친밀한 관계이다 보니,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가 김 사장을 (지금도) ‘김 기자’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김 사장이 서울 문화방송 사장으로 취임한 2010년 3월, 문화방송 노동조합이 ‘낙하산 사장 저지’와 ‘공영방송 사수’를 외친 배경은 기자 시절의 김 사장이 보인 정치적 행보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는 사장 선임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자일 하다 보면 정치인들과 친분이 생긴다”며 공정방송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에 대한 언론계 안팎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먼저 김 사장은 첫 임원 인사에서 보도본부장에 차경호, 논설위원실장에 황헌, 보도국장에 이장석 등을 임명했다. 김 사장이 과거 사회부 기자 시절 서울지방경찰청을 출입할 때 문화방송 수습기자로 입사한 김 사장의 ‘측근 인사’들이었다. 당시 인사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큰집 조인트” 발언도 언론을 통해 불거져나왔다. 김 전 이사장은 “이번 인사는 김재철 사장 (혼자 한) 인사가 아니다”라며 “큰집도 (김 사장을) 불러다가 ‘조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 (만들어진 인사)”라고 주장했다.

김재철 사장은 매일 아침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으로 출근하지 않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지부 조합원들은 매일 그를 찾으러 다닌다. 지난 2월13일 조합원들이 김재철 사장의 주민등록상 거주지로 알려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재철 사장은 매일 아침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으로 출근하지 않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지부 조합원들은 매일 그를 찾으러 다닌다. 지난 2월13일 조합원들이 김재철 사장의 주민등록상 거주지로 알려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92년 정치부 여당반장 시절
초선의원 이명박과 가까워져
지자체 선거 앞두고 휴직계 낸 뒤
고향 사천에 1년여간 머물기도

2년간 영업이익 900% 증가
돈벌이 탁월한데 씀씀이도 커
“법인카드 7억 쓴 게 왜 문제냐”

문화방송 파업 118일째
노조와 대화 거부한채 잠행중
매일 배임·횡령 의혹 쏟아져도
당사자는 배짱, 검찰은 뒷짐

드라마 제작·편성권까지 쥐락펴락
문화방송의 각 부문을 차지한 김 사장의 측근 인사들은 이후 보도 및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정권 비판 기능을 없애는 데 앞장섰다는 지적이 많다. <후 플러스>, <더블유>(W) 등 공영성을 앞세운 시사프로그램이 폐지됐다. 4대강 등 정부 주요 정책에 대한 비판보도를 찾기 어려워졌고,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이유를 들어 방송인 김미화·김제동·김종배 등 몇몇 출연자들을 방송에서 내몰았다. 차기 한국방송학회장인 강상현 연세대 교수는 “방송의 독립성, 제작의 자율성이 공영방송을 유지하는 두 축인데, 김재철 사장 인선과 이후 인사를 볼 때 공영방송이 가져야 할 덕목을 잃었다”며 지난 2년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드라마·예능부문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왔다. 드라마 <내조의 여왕>을 만든 김민식 피디(노조부위원장)는 “문화방송은 전통적으로 피디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는데 김 사장 이후 자기 색깔을 낼 수 없어진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파업 이유를 들었다. 노조는 김 사장이 취임 이후 드라마국을 1·2국으로 나눠 경쟁시켰다고 주장한다. 특히 드라마국이 맡아온 수목드라마 2편을 편성국에 배정하면서 편성국이 담당한 <넌 내게 반했어>의 시청률이 높지 않자 수목드라마를 다시 드라마1국에서 맡기로 하는 등 전문영역으로 존중받아온 드라마 제작과 편성 결정권을 회사에서 독단적으로 행사한다는 논란을 빚었다. 김 사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하연 작가의 드라마 <욕망의 불꽃>, 이환경 작가의 <무신> 등 일명 ‘낙하산 드라마’의 제작도 문제였다.

경영자로서의 김 사장은 어땠을까. 울산 문화방송(2005~2008)과 청주 문화방송(2008~2010)의 사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김 사장은 ‘협찬 유치’에 능했다. 지역방송사 사장의 최대 역할은 광고 수입을 확보하고 행사를 유치해 수익을 높이는 것인데, 김 사장은 그 점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노동조합 쪽도 김 사장이 기업체와 접촉해 사업을 기획하거나 행사를 많이 유치해온 사실만큼은 인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김 사장 재직 시절의 울산과 청주 문화방송 경영실적을 살펴보면, 알려진 것처럼 실적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청주 문화방송 사장으로 부임한 첫해인 2008년 64억5천만원의 매출총이익을 올리는 등 전년도 대비 20% 오른 성과를 기록한 정도를 꼽을 수 있었다. 또 업무추진비를 많이 사용하는 등 사장의 씀씀이가 커서 회사에 남는 게 없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서머 페스티벌 등 방송사가 주최한 축제에 고향인 사천 주민을 초청하거나 사천에서 열린 행사에 나올 가수를 울산 문화방송에서 섭외하고, 정당 행사에 자주 참석하는 등 사적인 이해관계를 앞세운 사장 모습을 기억하는 조합원들도 있었다. 문화방송 노조는 지난 18일 펴낸 <총파업특보 제75호>를 통해 김 사장이 지역방송 사장 시절 사장은 판매활동비를 받지 못하자 자신이 끌어온 기업 협찬금을 다른 임직원들이 협찬해 온 것처럼 꾸며 일정 비율의 판매활동비를 비자금으로 조성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울산 문화방송은 노사가 갈등중인 상황이라 공식적으로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알려왔다. 청주 문화방송에서도 구체적인 답변을 거부했다.

서울 문화방송에 대한 경영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김 사장 취임 첫해였던 2010년 문화방송은 매출액 7429억·영업이익 605억원, 지난해에는 매출액 8910억·영업이익 740억원을 올렸다. 전임 엄기영 사장 시절이던 2008~2009년 영업이익이 43억과 60억이었던 것과 견줘 10배 이상 늘어난 수치였다. 김 사장은 이와 관련해 <한겨레> 인터뷰에서 “드라마 자체제작 비율을 높여 수익성을 강화했고, 글로벌사업본부를 통해 지난해에만 2000억원의 수익을 얻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의 경영실적에 대한 다른 평가도 있다. 글로벌사업본부의 한 관계자는 25일 “겉으로 드러난 실적은 좋았는지 모르지만 김 사장은 단기적 성과를 위해 문화방송의 장기적 역량 강화를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김 사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일회성 한류 콘서트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무용가 정씨 특혜에 친오빠 취직도
김 사장이 문화방송 경영 부문에서 나름의 성과를 얻었다고 주장하는데도 노조가 ‘낙하산 사장 퇴진’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또 있다. 노조는 파업 시작과 함께 김 사장의 배임 및 횡령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김 사장이 과거 도쿄 특파원 시절 만난 재일동포 출신 무용가 정아무개(54)씨와 아파트를 공동으로 구입하고 정씨에게 특혜를 몰아줬다는 것이다. 노조가 공개한 2010년 3월부터 2012년 2월까지 2년간 김 사장이 사용한 법인카드 내역을 보면 유독 정씨가 살았던 서울 종로구 신영동의 집 근처에서 사용된 적이 많았다. 음식점, 주유소 등에 쓴 게 총 162회 2522만원이었다. 포장판매만 하는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횟집에서는 4회 총 32만9천원이 결제됐다. 13회 총 155만원을 결제한 한 수산물 도매 겸 음식점의 여주인(49)은 지난 20일 밤 기자와 만나 “2010년까지는 포장판매를 주로 했는데 그때 결제됐다면 포장 손님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2회 총 153만원이 결제된 한 포장마차 주인은 김 사장이 아침에 먹겠다며 회를 포장해갔다고도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이밖에도 정씨의 공연단을 프로그램에 7년간 출연시켜 20억원을 지급하는 등 특혜를 줬고, 정씨의 친오빠를 지난해 문화방송 동북3성 해외지사장에 1년 계약직으로 임명했으며 정씨와 함께 충북 오송의 아파트 3채를 구입해 비자금으로 빼돌렸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김 사장과 사쪽은 노조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이진숙 문화방송 기획조정본부장은 “사장의 법인카드는 별도로 이용한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노조 주장처럼) 7억원을 썼다고 해도 업무상으로 사용했기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또 이 본부장은 “정씨에게 특혜를 준 적이 없으며 정씨의 친오빠는 이름만 지사장일 뿐 통신원 자격의 지역 전문가로서 실제 동북3성 지역에서 통신원 역할을 해왔다”고 해명했다. 아파트 공동구입 의혹에 대해서도 사쪽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오히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임명된 사장에게 퇴진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불법파업 중인 노조의 파업이 정도를 넘었다는 것이 사쪽 시각이다.

문화방송 노사가 김재철 사장 퇴진을 놓고 전혀 접점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법인카드 사적 사용 여부, 지위를 이용한 특혜 부여, 아파트 공동 구입 등을 내세워 노조가 김 사장을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고발한 세 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파업사태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수사기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촉구했다. 박주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는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줘서 회사에 손해가 났을 경우 업무상 배임으로 봐야 한다며 최선이 아니었음에도 정씨와 계약을 했다면 검찰의 기소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정씨에게 고액의 출연료를 줬는지 여부도 통상의 관례에 비춰서 평가해 배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선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은 검찰이 수사의지를 가지고 개인적인 용도로 썼는지 증거확보를 우선할 때 배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에서 고발한 김 사장의 배임·횡령 혐의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 17일 만난 서울 영등포경찰서의 관계자는 “지난달 21일 경찰에 출석한 김 사장의 답변이 충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면서도 “개인적으로 사용한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재철 사장의 문화방송에서 노사는 끝을 알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30여년 문화방송에서 근무한 한 방송인은 “공영방송 사장의 진퇴 문제는 늘 정치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문화방송이 더 좋은 방송이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을 정치파업, 불법파업이라고 몰아선 안 된다”며 사쪽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했다. 반면 지역 문화방송 사장을 끝으로 퇴직한 또다른 방송인은 “노조가 파업을 풀고 들어와서 협상을 해야지, 너무 오래 파업을 이어가는 것은 안 된다”며 파업 장기화의 책임을 노조에 돌렸다.

파업 넉달째에 접어들며 공영방송 제작·편성의 파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김 사장은 여전히 파업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고집하고 있다. 사쪽은 25일 권재홍 보도본부장과의 폭행시비와 김 사장 인터뷰 시도 등을 이유로 박성호 기자회장, 이상호·왕종명·최형문 기자 등 4명의 기자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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