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임명제청 ‘이사회 2/3 찬성’으로 강화 등
민주 ‘수신료 인상 선결조건’ 제안에 KBS “협조”
언론계 “공영방송 정상화 당면과제 물타기 우려”
민주 ‘수신료 인상 선결조건’ 제안에 KBS “협조”
언론계 “공영방송 정상화 당면과제 물타기 우려”
지난달 수신료 인상을 둘러싼 대치 정국에서 느닷없이 ‘한국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이 의제로 부상했다. 민주당이 <한국방송>(KBS) 수신료 인상안의 선결조건 중 하나로 한국방송 이사회 구성 등 지배구조의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한국방송도 “국회에서 논의하면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수신료 인상안 처리가 무산된 이후에도 민주당은 수신료 인상의 전제로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하겠다는 자세인 반면 한나라당은 연계 자체에 소극적이다.
언론계에서는 지배구조 개선은 장기적으로 중요한 과제이지만, 정권이 방송을 장악한 지금 이 문제에 몰입하는 것은 자칫 ‘공영방송 정상화’라는 당면 과제를 물타기하는 데 악용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한국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한 이유를 현행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방식으로는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공정보도를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민주당이 제안한 한국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은 지난해 11월 정장선 의원(민주당)이 대표발의한 방송법 일부 개정안을 토대로 하고 있다. 개정안은 현재 11명(여야 7 대 4)인 한국방송 이사를 1명 더 늘려 12명으로 하되 국회 교섭단체 여야 각 4명,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 전문성과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추천한 사람 4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안이다. 또 사장 임명제청은 현행 이사회 재적 과반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바꾸도록 했다. 정 의원은 “한국방송의 최고의결기관인 이사회 구성이 중립적으로 이뤄져야 사장 선임도 공정성이 보장된다”고 밝혔다.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적인 민주당과 달리, 한나라당은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수신료 인상안 처리에 민주당이 합의해주면 지배구조 개선안을 소위에서 논의해보자는 태도였다.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달 25일 한국방송 <심야토론-수신료 인상안 긴급토론회>에서 “한국방송 사장이 (이사 재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면 영원히 뽑히지 못할지도 모른다”며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8월 국회에서 이 법안이 여야간 집중 논의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김인규 한국방송 사장은 지난달 24일 국회에 출석한 이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발언이 부쩍 잦아졌다. 지난 1일 월례 직원조회 때도 독일의 비정치적 전문가로 구성된 수신료 산정위원회 등을 언급하며 “정파적 이해에 따라 수신료가 결정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이 사안을) 지배구조 개선 문제와 함께 강력히 제기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배구조 개선안은 한국방송 노동조합(구노조)이 일찍부터 주장해왔다. 최재훈 노조위원장은 “사장 선임 같은 중요 사안은 <비비시>(BBC) 등 외국의 공영방송처럼 특별 다수제를 도입해 이사 3분의 2 찬성으로 한다면, 야당 이사들이 최소 1~2명은 합의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방송 이사회도 지난 4월 제도 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사 3명이 참가하여 수신료 산정, 지배구조 등 제도 개선을 폭넓게 논의하고 있다. 특위 위원인 진홍순 이사는 정권이 교체된 뒤 정치권의 한국방송에 대한 이해관계가 달라지면서 끊이지 않고 있는 정쟁을 막기 위해 “외국의 공영방송제도 연구 등 회의를 세차례 했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새노조)와 시민단체, 학계에서는 지배구조 개선문제보다는 시민사회가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해온 공영방송 정상화가 우선이라는 시각이다.
엄경철 한국방송 새노조 위원장은 “사장 선임의 절대다수제 등 지배구조 개선은 장기적으로 필요하지만 현재 권력 감시 프로그램의 복원 여부 등에 쏠리는 관심을 변질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정권이 방송을 장악한 것은 제도의 부실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한국방송 스스로가 성숙한 공영방송의 관행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교수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방송이 공영방송의 위상을 스스로 되찾아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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