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디들, 기자 데스크-피디 제작 구도에 “통제강화” 우려
<한국방송>(KBS)은 지난 18일 피디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추적 60분’ 소속 제작진 10명(피디 9명·기자 1명)을 보도본부로 발령냈다. 사쪽이 내건 명분은 기자·피디 협업시스템 구축으로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추적60분이 보도본부로 이관되면서 달라진 점은 최종 게이트키퍼가 기존 피디 출신 국장에서 기자 출신 국장으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게이트키핑은 피디 팀장(CP)과 피디 부장(EP)을 거쳐 기자 국장으로 이어지게 됐다.
하지만 제작의 주축은 기존처럼 피디들이 맡게 된다. 사쪽은 지난 24일 팀장급 기자 1명을 충원했다. 이 기자는 피디 팀장보다 더 선배급이어서 데스크 역할을 맡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사쪽은 데스크라기보다는 제작진 지원 역할이며, 부장이 추후 구체적 임무를 맡길 것이라고 했다. 또 기존 피디 팀장이 맡던 진행자도 오디션을 통해 공개선발하겠다고 밝혔다가 피디들의 반발에 물러선 상태다.
사쪽은 기자-피디 협업의 대의를 내세웠으나 결국 실상을 들여다보면 ‘기자 데스크와 피디 제작’의 수직적 분업시스템을 갖춘 것이라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는 조직개편이 통제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피디들의 본질적 불안감을 더욱 짙게 한다. 한 중견 피디는 “당장 시시콜콜 간섭은 없을지라도 민감한 아이템에 관한 한 통제가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10여년 전부터 간간이 이뤄진 기자·피디 협업 실험은 지금과 같은 ‘일방통행’은 아니었다. 1999년 ‘뉴스 투데이’에 피디를 파견한 것은 심층성 강화 취지였다. 당시 제작 노하우를 공유했지만, 화학적 융합은 실패한 채 원위치 됐다. 2003년 협업 재시도는 ‘한국사를 말하다’라는 피디 제작물에 기자를 파견하는 형식이었다. 피디 구성력을 습득한 기자들이 따로 만든 시사기획물인 ‘쌈’은 각종 특종상을 받으며 성가를 높인 바 있다. 정연주 전 사장 시절의 이런 시도는 ‘케이비에스 스페셜’을 기자·피디가 각각 납품하는 시스템으로 경쟁시켜 프로그램 질을 끌어올리게 하기도 했다.
한 22년차 피디는 “기자와 피디의 제작시스템의 장점을 살린 채 실제 프로그램 경쟁력을 높인 게 기존의 협업 시도였다”며 “지금은 협업 효과에 대한 그림이 없다”고 말했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