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참여 저널리즘’ 확산 성과
최근 수익성 악화로 고전
“대안적 수익모델 찾을것”
최근 수익성 악화로 고전
“대안적 수익모델 찾을것”
“나무꾼과 선녀처럼 살고 싶었어요”.
2005년 10월31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걸린 이 기사는 ‘시민의 힘’을 보여줬다. 유방암 수술비를 구하지 못해 한국인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필리핀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아멜리아의 소식을 전한 시민기자와 누리꾼 독자들은 기적을 일궜다. ‘좋은 기사 원고료 주기’로 독자가 모아준 1700만원은 죽을 날만 기다리던 아멜리아를 구해낸 것이다.
“모든 시민이 기자다.”
시민참여 저널리즘을 기치로 출범한 오마이뉴스가 지난 22일 10년을 맞았다. ‘열린 진보’를 표방한 오마이뉴스는 다음해 창간된 <프레시안>과 함께 한국 인터넷언론을 이끌었다. 뉴스 소비자를 직접 생산자로 참여시킨다는 ‘발상의 전환’은 큰 호응을 얻었다. 727명으로 시작한 시민기자는 10년 새 85배 이상 늘어 현재 6만2000여명에 이른다. 4명으로 출발한 직원은 70명(상근기자 40명)으로 늘었다. 창간 9개월 만에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선정 ‘매체 영향력’ 10위에 오르기도 했다.
“나무꾼과 선녀…” 기사로 지난 10년간 오마이뉴스 기사 42만8000여개 중 최다 원고료를 받은 김혜원 기자는 사십대 중반의 ‘평범한 아줌마’였다. 그는 “내가 쓴 기사 한 편으로 유모차 통행을 막았던 인도의 볼라드(돌기둥)가 제거되고, 말 많던 학교 어머니회가 사라지고, 난치병 환우와 독거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생겨났다”고 했다.
2002년 대선은 오마이뉴스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그해 3월 국민적 관심사였던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면서 많은 누리꾼의 이목을 끌었다. 당선자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단독인터뷰 매체로 선택한 게 바로 오마이뉴스였다.
노 전 대통령의 기성 언론 견제 정책은 빛과 그늘을 동시에 가져왔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형성된 인터넷언론 춘추전국시대는 오마이뉴스만의 차별성을 약화시켰다. 광고에 70% 의존하는 수익구조 역시 이명박 정부 들어 ‘중앙정부 광고 0’의 상황을 맞으면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2006년부터 4년 동안 28억5000만원의 누적적자를 냈다.
오연호 대표는 “초기에는 (온라인에서) 영향력을 오마이뉴스가 독점했다면, 지금은 다른 매체와 공유하고 있다”며 “생경하고 무모해 보였던 것이 상식과 문화가 되고, 그것이 언론계뿐 아니라 정치 사회 전반의 참여민주주의로 확장됐다”고 평가했다. 오 대표는 “제1기인 지난 10년이 ‘오마이다운 뉴스참여와 뉴스유통의 혁신’이었다면, 제2기는 대안적 수익모델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월 1만원씩 내는 유료회원제인 ‘10만인 클럽’ 구축에 들어가 6개월 만에 7000여명을 모집했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오마이뉴스는 외국 논문에서 자주 언급될 만큼 세계적으로 시민참여 저널리즘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영주 내밀사회문화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오마이뉴스가 저널리즘 폭과 행위자의 폭을 넓힌 점은 긍정평가하지만, 시민저널리즘을 넘어서 이슈 추적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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