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선택권은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비자는 상품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유권자는 정당이나 후보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선택권이 충분히 주어지느냐 아니냐에 따라 국가나 시장이 자유로운지 통제적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그런데 방송 수용자에게는 이런 선택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 수용자들이 원치 않는 채널, 보고 싶지 않은 뉴스까지 안방에 들어오지만 이를 거부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방송법은 지상파 방송을 보편적인 서비스로 규정했다. 수용자는 언제 어디서나 지상파 방송 서비스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날로그 방송체제에서는 불가피하게 수용자의 채널 거부권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 수용자가 특정 채널의 시청을 거부하려고 해도 기술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용자는 지상파 방송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은 이런 한계를 극복했다. 디지털 방송에 접속한 가구별로 특정 채널을 공급하고 중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지털 시대는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채널을 포함해 어떤 채널에 대해서도 수용자가 거부할 권리, 선택하지 않을 자유를 보장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디지털 민주주의다. 디지털 방송체제에서 수용자들 대부분은 유료방송사를 통해 채널 서비스를 공급받는다. 그런데 유료방송사는 지상파채널, 공익채널 등을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한다. 이것이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도 꼭 있어야 할 제도인지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어떤 채널을 의무적으로 편성할지, 수용자가 특정 채널을 거부할 자유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를 숙고해서 고칠 것이 있으면 고쳐야 한다. 지상파채널을 의무적으로 편성해서 공급하는 것까지 그렇다손 치더라도 수용자가 특정 채널을 거부한다면 이들의 선택권을 보호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미디어는 다양한 정보나 논쟁적인 주제를 많이 생성해서 사회적으로 이로운 기능을 많이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헌법상 언론의 자유는 공급자의 자유를 유독 강조한 것 같다. 그러나 디지털 다종 미디어 시대, 수용자 세분화 시대에 공급자의 자유만 강조하는 것은 편향이다. 더구나 미디어 독과점의 횡포로 인해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가 위험해진다는 비판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채널 선택권과 같은 수용자의 자유는 한층 중요해진다. 수용자의 채널 거부권은 채널 공급의 일방성을 억제함으로써 수용자의 선택권을 보호하는 기능을 할 것이다. 이것이 신개념의 언론 자유다. 20세기 언론의 자유는 주로 신문사나 방송사의 자유 즉 공급자의 자유를 강조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수용자의 자유는 제한적이었다. 다행히 21세기는 디지털 혁명, 인권과 민주주의 확산으로 수용자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획기적으로 확대시켰다. 고도의 디지털 자유 시대에 수용자들이 필요한 채널, 원하는 정보를 스스로 알아서 선택하고,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 채널 선택권은 연간 10조원가량의 방송 재정을 부담하는 수용자의 권리다. 이것이 미디어 시장의 공공성이며 자유다. 디지털 방송시대에는 수용자도 선택할 자유, 거부할 권리를 가진다. 수용자들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일 뿐 아니라 방송 재정을 부담하는 소비자이기도 하다. 이들이 채널 선택의 자유와 권리를 원하고 있다. 대리 만족에 그쳐야 했던 구시대의 언론 자유를 대체하는 신시대의 언론 자유가 어둠 속의 새벽처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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