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위법 상태를 해소하지 못한 미디어법의 시행령이 결국은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런데 미디어법 시행으로 맨 먼저 원치 않는 요금청구서를 받게 될 대상은 국민이 될 것 같다. 미디어법이 시행도 되기 전에 수신료 인상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인상 액수까지 거론되고 있다. 현재 2500원 하는 공영방송 수신료를 5000~6000원으로 올리는 것이 적절하다는 주장이다. 그것도 이 나라 방송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말이니 상당히 힘이 실린 주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게다가 <한국방송> 사장도 신년사를 통해 수신료 인상이 올해의 ‘숙원사업’이라고 했다니 이번에도 역시 여론에 아랑곳없이 한판 밀어붙이기를 할 기세다.
수신료 인상안은 한국방송 이사회의 동의와 방통위 심의 등을 거쳐 국회를 통과하면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이사회나 방통위 모두 여권의 추천이사나 추천위원이 다수를 장악하고 있으니 엠비 선거참모 출신인 한국방송 사장과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라는 방통위원장이 밀어붙이면 수신료 인상안이 한국방송 이사회와 방통위를 통과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나라당 역시 세종시와 4대강 문제로 가뜩이나 여론이 민감한 때에 수신료 인상 발언이 터져나온 것에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이지만, 역시 때가 되면 다수의 힘을 빌어 인상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할 것이다.
정부·여당은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하면서 방송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 글로벌 미디어기업 육성은 물론 여론 다양성 확보 등을 명분으로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그건 그냥 듣기 좋아라고 하는 말이다. 더 실질적인 목적은 재벌과 친여보수 신문사가 (보도 가능한) 방송사업에 진출하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종편 채널을 주는 것이다. 날치기 처리로 그러한 목적은 이제 달성했다. 그러나 열악한 국내 방송시장 환경에서 신규 방송사업자가 제대로 자리잡기는 매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다보니 종편 살리기를 위한 온갖 특혜 조처들이 거론되고 있다. 수신료 인상안도 실질적으로는 신규 종편 살리기를 위한 한 방안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강력 제기되고 있다. 명분상으로는 공영방송 발전 운운하지만, 실은 수신료를 대폭 인상하는 만큼 한국방송의 기존 광고를 줄여서 그러한 방송광고 물량으로 종편 사업자들의 숨통을 터주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어쨌든 우리나라 공영방송이 공영방송답게 발전할 수만 있다면 적정 수신료 인상을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공영방송답기 위해서는 그만큼 정치적으로 독립적이고 공정하며 다양성도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기류가 그와 같은 기대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엠비 선거참모 출신이 수장으로 있는 한국방송은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는 비판을 계속 받고 있다. 갈수록 더욱 노골적으로 대통령과 정권 홍보방송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난까지도 받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 등장할 종편방송 역시 대부분 재벌이나 친여보수 신문사들의 소유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성은 당연히 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다.
미디어법 통과로 기껏 국민들이 받게 되는 것이 인상된 수신료 청구서이고, 결국 듣게 되는 것이 엠비어천가나 국민을 기만하는 정권 홍보방송이라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씁쓸하구만” 하고 말 것인가?
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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