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감시 보도, 인터넷서 삭제소지 커져. 김영훈 기자 kimyh@hnai.co.kr
언론사 동의 없이 중재위 결정만으로 ‘싹둑’
포털 통한 피해확산 막겠다는 취지 무색해져
포털 통한 피해확산 막겠다는 취지 무색해져
지난 7일부터 기사를 생산한 언론사뿐 아니라 기사를 노출한 포털에도 정정보도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네이버·다음·네이트 등 인터넷 포털 기사도 언론중재 대상이 되는 것으로 언론중재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털을 통한 무차별적인 피해 확산을 막는다는 취지로 도입한 이 조치가 비판적인 보도 죽이기에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포털 유통기사에 대한 언론중재위 제소 가능 △기사 제목과 최초노출 시간 등을 담은 뉴스 목록 6개월 이상 서버 보관 의무화 △정정보도 청구 중인 기사 표시 △화면에 편집자 이름 게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루 평균 이용자 수 10만명 이상이 대상으로, 주요 포털과 중앙지·방송사 닷컴 사이트는 모두 해당된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인터넷신문은 2005년 7월부터 언론중재 대상이 됐다.
포털 쪽은 “피해구제에 대한 실무적인 가이드라인이 생겼다”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김성곤 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그동안 정정보도를 요청해도 포털사업자가 받아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누리꾼을 ‘낚기’ 위한 언론사 닷컴이나 포털의 선정적 뉴스 편집이 자정되는 효과도 기대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포털에 사실상의 ‘기사 수정·삭제권’을 줬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기사를 직접 생산하지 않은 포털 쪽에서는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최대한 모면할 수 있는 중재위의 조정을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윤식 네이버 홍보팀장은 “명백하게 피해를 봤다는 게 (중재위에서) 확인되면, (언론사와) 실랑이를 벌일 필요 없이 기사를 내리면 된다”고 말했다.
또 중재위에 가는 것을 꺼리는 언론사의 사정을 악용해 포털이 정정·반론 보도의 소지가 있거나 정정·반론 보도 청구가 들어온 기사에 대해 해당 언론사에 기사를 수정하거나 내리도록 하는 압력을 넣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언론단체 간부는 “기자들은 기본적으로 중재위에 가는 것을 꺼린다”며 “중재대상 조항은 포털이 언론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판 보도를 무리하게 제어하는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상현 연세대 교수는 “피해구제 영역이 넓어져 인권신장으로 볼 수 있지만, 권력 감시보도를 삭제하기 위한 정치·경제 권력집단의 악용 소지가 크다”고 내다봤다. 송경재 경희대 연구교수도 “앞으로 정권을 위한 법이 될 확률이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보도의 진실성 유무를 가리기 힘든 ‘명예훼손’ 관련 기사는 국가기관이나 정치인·경제인 등 공인이 이의제기가 남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언론중재위 연간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제소된 954건의 기사 가운데 899건(94.2%)이 명예훼손에 대한 이의제기였다. 송 교수는 “‘블로그 게시물 삭제 요청은 방송통신심의위, 권력비판 기사 삭제 요청은 언론중재위’란 새 공식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방송통신심의위는 최병성 목사의 시멘트 비판 블로그 글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발언 비판 인터넷 게시글 등을 ‘명예훼손’을 이유로 삭제 조처를 내린 바 있다. 송 교수는 “포털이 언론중재위 제소라는 사실상의 또다른 선택적 편집권을 갖게 된다면 정치자금 의혹 보도나 인사청문회 첩보나 고발, 탐사 기사 등은 포털에서 차단되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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