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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범죄없는 경찰서·화재없는 소방서 ‘뭘 찍나’

등록 2008-05-15 16:56

일라이 리드가 2006년 12월 서울 인사동의 한 전통가게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일라이 리드가 2006년 12월 서울 인사동의 한 전통가게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한겨레 창간 20돌] 매그넘 한국을 찍다
촬영 뒷이야기

매그넘의 작가들은 다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그들 가운데 20명이 1년 사이에 한국을 카메라에 담았던 만큼, ‘매그넘 코리아’ 프로젝트는 풍성한 일화들의 연속이기도 했다. 그들은 ‘거장’의 풍모에 걸맞은 사진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여기저기서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냈으며, 작업의 대상들과도 부단히 소통했다.

브뤼노 바르베가 지난 3월 서울 충무로 거리를 걷고 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브뤼노 바르베가 지난 3월 서울 충무로 거리를 걷고 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 아바스 나는 찍을 뿐 찍히진 않는다

세계적 종교 사진가인 이란의 아바스는 ‘얼굴 전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 자신이 사진 찍히는 것을 매우 꺼려, 매그넘 홈페이지 프로필에도 손으로 한쪽 눈을 가린 사진이 올라 있을 정도다. 그는 “사진가는 사진기 뒤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자신의 사진세계와 이란 혁명에 대한 강연회를 자진해서 열 만큼 소통에 적극적이기도 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저녁 한겨레신문사에 모인 200여 명을 상대로 그는 진지한 강연을 했다. 사진 애호가들이 참여한 자리라 다들 카메라를 가져와 아바스를 찍고 싶어했는데, 아바스는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한 뒤 단서를 달고 사진 촬영을 허락했다. “개인적으로 보관하거나 보는 것은 좋지만 웹에는 절대 올리지 말아 달라!” 이후 아바스의 강의를 담은 여러 블로그를 발견했지만 아바스의 얼굴 사진은 한 장도 보지 못했다. 서로 약속을 지킨 것이다.

# 베리 평소엔 신사…촬영땐 맹수처럼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특히 여성에게 인기가 많았던 작가로는 단연 영국의 이언 베리를 꼽을 수 있다. ‘영국 신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베리는 함께 있는 동안 상대가 여왕이라도 된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나가고 들어올 때 항상 문을 열어주고, 엘리베이터에서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주며, 좋은 자리를 양보하고, 코트를 들어준다. 하지만 일하는 동안은 차안에서 눈 한번 안 붙이고 과자며 사탕을 줘도 사양한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인 그는 촬영할 때 상대가 의식하지 못하도록 조용하고 부드럽게 움직여,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 같다는 평을 듣는다. 베리는 이런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사진가는 관찰자일 수밖에 없다. 조용히 움직여서 상대가 나를 의식하지 못할 때 찍어야 한다. 원하는 대로 구성해서 세팅을 해놓고 찍는다면 그건 보도가 아닌 선전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군대와 경찰, 소방관을 찍은 영국의 크리스 스틸레 퍼킨스에게도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그가 경찰서에서 작업한 사흘간 범죄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소방서로 옮겨 갔을 때도 이틀간 불이 나지 않았다. 소방서와 경찰서에서 “이런 일이 흔치 않은데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되레 걱정을 해줄 정도였다. 저녁에 풀이 죽은 채 맥주를 홀짝이던 그는 “이렇게 안전한 건 한국인에게는 매우 좋은 일이지만 작가로서는 정말 괴로운 일”이라며 “그렇다고 촬영을 위해 안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다행히 다음날 그는 해병대의 협조로 역동적인 한국의 군대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 바르베 식사중 뛰어나가 수녀들 ‘찰칵’

매그넘 작가에게는 일과 휴식의 경계가 없다. 최근 다른 일로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부르노 바베이는 <한겨레> 사업국 직원들과 식사차 식당에서 기다리는 동안 길거리에 한 무리의 수녀들이 웃으며 지나가자, 갑자기 뛰어나가더니 5분쯤 후에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태연스레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는 동료들이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 궁금해하며 앉은 자리에서 세 시간 동안 다른 작가의 사진을 보고, 7월 초 출간될 사진집 <매그넘 코리아>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 어윗 “매력적 작업 역사에 남기를”

매그넘 안에서도 실력자로 꼽히는 엘리어트 어윗은 작품 활동과 상업사진을 엄격하게 구분하기로 유명하다. 어윗은 “상업사진은 고용주의 취향과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지만, 이번 한국 작업은 작품 활동의 연장선상이었다”며 만족감 드러냈다. 어윗은 또 “한국은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흥미로운 나라임에도 그 문화와 영혼이 서구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매그넘 작가 스무 명이 함께한 이 매력적인 작업이 미래를 위한 역사적 기록이자 시각 자료로 남게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하수정/한겨레신문사 매그넘 코리아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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