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 부부킷
[한겨레 창간 20돌] 스무살 이야기
[세계 곳곳 도전하는 20대]
나이 스무살이란 무엇을 상징할까? 어떤 나라에서 스무살은 ‘한 가족을 이끄는 가장’을 뜻하지만, 같은 나라에서도 바깥 출입이 금지된채 사실상의 죄수로 사는 스무살이 산다.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며 존재를 증명하는 스무살이 있는 한편, 그마저도 불가능해 맨발로 뛰는 스무살이 있다. <한겨레> 국제부는 창간 20돌을 맞아 진보와 열정, 도전과 새로움을 상징하는 세계 곳곳의 20대 네 사람을 소개한다.
<팔레스타인 최초 여성 육상선수> ‘맨발의 꼴찌’지만 평화 올때까지 뛸래요
모두 묻습니다. 맨발로 뛰면 아프지 않니? 전 말합니다. 맨발로 달리면 더 빨라서 좋아요. 이젠 저, 사나 아부부킷(24)이 묻습니다. 정말, 정말 내가 아파하는 게 뭔지 아세요? 새벽 5시에 일어나 8㎞를 뜁니다. 수업이 끝나면 코치님이 계시는 곳까지 1시간여를 달려갑니다. 우리 마을 ‘가자지구’엔 육상 트랙이 없습니다. 운동화를 사지 못했지만, 맨발로 달리면 되니 상관없습니다. 여자아이가 반바지에 반팔옷을 입고 뛴다고 사내아이들이 돌을 던진 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얘들아, 쏜살같이 뛰는 날 맞추려면 그 정도 돌팔매 실력으론 어림없단다. 정말 무서운 건 포탄입니다. 아이들 돌팔매처럼 빗나가면 좋으련만. 아기와 할머니 머리 위로 떨어지는데, 아기와 할머니는 알지 못합니다. 뛰다가 그걸 보는 날엔 기록이 저조합니다. 스무살이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갔습니다. 팔레스타인 최초 올림픽에 나간 여성 육상선수라는데, 새 운동화를 신어서인지 꼴찌를 했습니다. 2분32초나 걸렸지만, 800m를 끝까지 달렸습니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도 나갔습니다. 대회 한 달 전 이집트로 나와 겨우 카타르 도하에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이 150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가자지구 국경을 봉쇄했는데, 그들이 국경을 열어줄 때 서둘러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열심히 뛰었지만, 전 또 꼴찌를 했습니다. 경기 며칠 전, 동네에 포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족은 무사했지만, 누군가의 가족은 무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몹시 아팠습니다. 5월8일 이스라엘은 건국 60돌을 맞았고, 살 곳을 빼앗긴 팔레스타인은 저항 60돌을 맞았습니다. 이스라엘과 독립을 바라는 팔레스타인이 평화협상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충돌은 여전합니다. 우리 동네는 그 충돌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올해 들어 가자지구에서만 300명 넘게 죽었습니다. 전 또 달립니다. 아직 마을엔 평화가 오지 않았고, 그들에게 달리기로 희망을 주겠다는 내 꿈은 시들지 않았으며, 아직 내 최고기록이 2분 벽을 깨지 못했으니까요. 포탄 파편이 없는 곳에서 맨발로 내달리면 2분 벽도 깰 듯한데 말이죠.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쿠바의 1인 독립언론 블로거>
폐쇄적 정부 숨막혀…세계에 실상 알려요
올라!(¡Hola!·안녕!) 전 32살의 쿠바 블로거 요아니 산체스에요. 요즘 저와 제 블로그(http://www.desdecuba.com/generaciony/)가 떴죠.
<타임>이 최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등과 함께 저를 ‘2008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뽑았으니까. 스페인의 저명 디지털 저널리즘상 ‘오르테가 앤 가제트’ 수상자로도 며칠 전 뽑혔죠.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 가운데 한곳인 조국 쿠바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깥 세상에 알린 게 눈길을 끌었나봐요. 관광업에 종사하는 평범한 쿠바인인데 말이죠. 사실, 쿠바 정권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서방이 의도적으로 띄워주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어찌됐든, 지난해 4월 블로그를 만든 뒤 지금까지 400만명이나 방문했으니 ….
쿠바 정부는 외국인과 정부 관리에게만 허용된 인터넷에 몰래 접속해서 비판적인 글을 쓰는 제가 달갑지 않나봐요. 독일에 서버를 두고 있는데, 더러 접속을 방해하니까요. 제가 국가최고 지도자인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최근 개혁도 비판했거든요. 휴대전화 및 컴퓨터 구입 허용, 외국인 전용 호텔 투숙 허용 등등 …. 지난 2월 형 피델 카스트로가 50년 가까운 통치 끝에 물러난 뒤 나온 조처죠. ‘개혁’, ‘변화’라지만, 이미 기존에도 암시장 거래 등에서 불법적으로 이뤄지던 것을 공식화한 게 뭐 그리 대단한가요? 이제는 공산당 일당 독재가 아니라 진정한 야당도 있고, 자유롭게 집회도 열수 있기를 바라요. 사실, 형 피델은 국민들에게 최면을 걸었을 뿐이에요.
저는 앞으로도 관광객처럼 가장해서 계속 글을 쓸거예요. ㅎㅎ.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이 목에 꽉 차 있어요. 쿠바 정부만 대변하는 국영매체는 이제 지겨워요. 정부는 변화를 향한 우리의 욕구는 막지 못할 거예요. 폐쇄적인 관료조직과 정부에 숨막혀하는 저 같은 젊은 쿠바인들이 이제 깨어나고 있거든요. 저는 믿어요. 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고, 우리의 목소리가 언젠가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괌의 ‘미군기지 반대’ 운동가>
영토 3분1이 미군기지…억압 사슬 끊어야죠
저는 줄리안 아구온, 괌에서는 꽤 유명인사예요. 제 유명세는 1998년 시작됐습니다. 이곳을 찾아온 빌 클린턴 대통령과 2만명 앞에서 국가를 불렀거든요. 그때만 해도 저는 노래도, 공부도 잘하는 이 섬의 대표적인 모범생이었습니다. 백사장과 푸른 바다의 낭만 … 한국분들은 괌하면 이런 광경을 떠올리시죠? 하지만 괌의 젊은이들에게 고향은 떠나고픈 가난과 억압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저 역시 미국 대학에 진학한 뒤 한때 ‘새 삶’을 꿈꿨습니다.
2004년 저는 인근 팔라우에서 열린 태평양 예술인들의 모임에 우연히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우리 차모로 형제자매들의 예술 활동은 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억압적 역사의 사슬을 끊고, 예술과 정치를 통해 해방을 찾는 이들과의 만남은 제 안에 있는 노예의 존재를 일깨웠습니다. 그 뒤 저는 ‘미국’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1898년 미국에 점령당한 괌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모든 군사작전의 거점이 돼 왔습니다. 1940~50년대에는 주변에서 무시무시한 핵실험이 자행됐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을 실은 비행기도 괌에서 출격했습니다.
미국은 저희를 ‘보호령’이라고 말하지만, 이들의 행위는 보호와 거리가 멉니다. 현재 괌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군기지는 북한 등을 염두에 둔 동북아 전초기지로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아세요? 괌 사람들의 동의 없이, 일본 오키나와 해병대 기지에서 온 미군과 군속 5만명이 추가 배치되고 있습니다. 한국 여러분과 저의 운명은 이렇게 엮여 있습니다.
오늘도 가난한 괌의 청년들은 미군에 자원 입대해 이라크에서 죽어갑니다. 괌의 원주민들로 구성된 시민단체 ‘차모로 네이션’의 대표가 된 저는 여전히 법학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는 모범생이지만, 조금 다른 싸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태평양 일대 섬나라에 사는 우리 차모로 사람들은 스페인과 미국이 도착하기 전 어업과 무역으로 튼튼한 경제와 사회를 자랑했습니다. 이런 역사와 문화, 존엄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할때 해법이 나올 것입니다. 기지에 의존하지 않는 대안적 경제구조가 독립투쟁의 시작입니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전쟁·할례 고통받는 소말리아 여성>
강제할례 잔혹한 전통 이땅서 사라지길
이스카 와란!(Iska Waran!·안녕!), 내 이름은 파티마(가명). <한겨레>와 동갑내기 스무살, 소말리아 모가디슈에 살아요. 얼마 전까지 이 창창한 나이의 저는 잠들 때마다 ‘내일 아침엔 깨지 않기를’ 기도했어요. 마흔살 아저씨와 강제로 결혼한 제 친구 다히로(가명)가 아기를 낳다가 죽은 뒤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요. ‘할례’(여성 성기 절제)를 받은 게 화근이었대요. 여자가 쾌락을 알면 큰 일이 난다나요? 우리나라에선 여성 10명 중 9명(98%)이 할례를 받아요. 불도 없는 깜깜한 방에서, 마취도 없이 면도칼이나 유리조각을 사용해서 죽는 사람들도 많아요. 미국으로 도망가 슈퍼모델이 됐다는 와리스 다리 언니가 강제 할례 금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지만, 나아진 건 없어요. 여덟살 때 할례를 당한 저도 가위 눌려 깬 새벽이 한 두번이 아니랍니다. 하긴, 사는 게 힘든 게 어디 어제오늘 일인가요. 세 살 때부터 폭격기 소리를 듣고 살았어요. 1991년부터 군벌끼리 다툼을 벌이면서 하루도 동네 조용할 날이 없었잖아요. 지난해 3월, 압둘라히 유수프 대통령이 이끄는 과도정부가 들어서면서 제법 국가 형태를 갖추나 했더니, 이슬람 반군과의 교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네요.
여기에 가뭄과 기근까지 겹쳤어요. 위조지폐가 판을 치고, 달러화당 4천실링이던 환율이 2만5천실링까지 올랐어요. 열흘 전쯤엔 우리 동네 바카라 시장 상인들이 실링 대신 달러화만 받겠다고 해서 폭동까지 일어났어요. 잠깐이라도 폼나게 살겠노라며 해적이 되는 사람들도 있어요.
세계 여러나라 구호단체들의 도움으로 생긴 새 학교의 ‘늦깎이’ 학생이 된 뒤, 저는 처음으로 희망이란 걸 생각하게 돼요. ‘전통’이란 이름으로 내 의지와 상관 없이 할례를 하는 게 부당하다고 여긴 그날부터요. 더 많은 어린이들이 저처럼 권리가, 평화가 무엇인지 눈을 뜨는 날이 되면, 아침이 두려운 날들은 끝이 나지 않겠어요?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팔레스타인 최초 여성 육상선수> ‘맨발의 꼴찌’지만 평화 올때까지 뛸래요
모두 묻습니다. 맨발로 뛰면 아프지 않니? 전 말합니다. 맨발로 달리면 더 빨라서 좋아요. 이젠 저, 사나 아부부킷(24)이 묻습니다. 정말, 정말 내가 아파하는 게 뭔지 아세요? 새벽 5시에 일어나 8㎞를 뜁니다. 수업이 끝나면 코치님이 계시는 곳까지 1시간여를 달려갑니다. 우리 마을 ‘가자지구’엔 육상 트랙이 없습니다. 운동화를 사지 못했지만, 맨발로 달리면 되니 상관없습니다. 여자아이가 반바지에 반팔옷을 입고 뛴다고 사내아이들이 돌을 던진 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얘들아, 쏜살같이 뛰는 날 맞추려면 그 정도 돌팔매 실력으론 어림없단다. 정말 무서운 건 포탄입니다. 아이들 돌팔매처럼 빗나가면 좋으련만. 아기와 할머니 머리 위로 떨어지는데, 아기와 할머니는 알지 못합니다. 뛰다가 그걸 보는 날엔 기록이 저조합니다. 스무살이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갔습니다. 팔레스타인 최초 올림픽에 나간 여성 육상선수라는데, 새 운동화를 신어서인지 꼴찌를 했습니다. 2분32초나 걸렸지만, 800m를 끝까지 달렸습니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도 나갔습니다. 대회 한 달 전 이집트로 나와 겨우 카타르 도하에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이 150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가자지구 국경을 봉쇄했는데, 그들이 국경을 열어줄 때 서둘러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열심히 뛰었지만, 전 또 꼴찌를 했습니다. 경기 며칠 전, 동네에 포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족은 무사했지만, 누군가의 가족은 무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몹시 아팠습니다. 5월8일 이스라엘은 건국 60돌을 맞았고, 살 곳을 빼앗긴 팔레스타인은 저항 60돌을 맞았습니다. 이스라엘과 독립을 바라는 팔레스타인이 평화협상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충돌은 여전합니다. 우리 동네는 그 충돌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올해 들어 가자지구에서만 300명 넘게 죽었습니다. 전 또 달립니다. 아직 마을엔 평화가 오지 않았고, 그들에게 달리기로 희망을 주겠다는 내 꿈은 시들지 않았으며, 아직 내 최고기록이 2분 벽을 깨지 못했으니까요. 포탄 파편이 없는 곳에서 맨발로 내달리면 2분 벽도 깰 듯한데 말이죠.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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