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게 울려 퍼진 ‘명비어천가’
언론 ‘당선자 걸어온 길’ 칭찬·미화 앞다퉈
한나라와 목소리 맞춰 특검법 철회도 압박
한나라와 목소리 맞춰 특검법 철회도 압박
지난주 제17대 대통령 선거 전후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를 놓고 ‘용비어천가’를 연상케 하는 권력 지향형 보도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의 인물 등을 조명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과거 전두환 정권 시절에 뿌리를 둔 영웅주의적 또는 위인전 방식의 지나친 미화가 되살아나는 듯하다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 방송사가 당선행사 주도=<에스비에스>는 대선 당일인 19일 저녁 서울시청 앞에 축하무대를 꾸려 당선행사를 주도하면서, 당선자의 지지자들이 준비한 ‘국민 성공 시대’라는 케이크를 자르는 장면까지 보여주었다. 이는 당선의 의미나 대선 이후의 과제 등에 대해 차분하게 분석해야 할 방송사가 축제의 주체가 되었다는 지적을 들었다. 또 당선자가 걸어온 길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칭찬 일색의 영웅주의적 접근을 해서 논란을 빚었다. 이미 에스비에스는 대선 전에 ‘에스비에스 스페셜’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시사 프로그램에서 비비케이 검증 등 대선 이슈를 다룬 꼭지들이 전무하여 민주언론시민연합으로부터 “에스비에스는 시사 교양국이 있기는 한 것이냐”는 비판을 들은 바 있다.
이에 앞서 에스비에스는 이날 출구조사에서 이명박 후보가 51.3% 득표율로 과반을 얻는다고 예측 보도했다. 이어 개표율 6%를 막 넘은 시점인 8시5분에 이명박 후보의 ‘당선 확정’을 규정했다. 방송사들은 출구조사와 실시간 당선확률 시스템 등을 통해 당선확률 95%가 나올 때 통상적으로 ‘당선 유력’을 공지하고, 99% 때 ‘확실’, 100% 때 ‘확정’하는 단계를 거쳐왔다.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이 이날 저녁 8시께 ‘확실’ 판정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런데 에스비에스는 당시 확률 99% 상황에서 ‘당선 확정’을 앞서서 공표하고 나섰다.
■ 신문들 특검법 철회론=대선 다음날 대부분 신문들은 이명박 당선자의 인물론 등 정국과 관련하여 지면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특히 <중앙일보>의 이명박 인물기사에서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전통적 위인전 코드가 읽혔다. 20일치 8면 ‘이명박의 도전과 성취 66년’의 기사는 “백발의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관상을 보니 이름을 크게 떨칠 놈이야. 가난하더라도 정말 잘 키워야 해’라고 말했다. 이명박은 ‘가난할수록, 힘이 들수록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 한마디를 떠올리며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고 회상했다”라고 적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대선 직후 ‘비비케이 특검법’ 철회를 들고 나왔다. 동아일보는 20일치 17면 “법조계 ‘비비케이 특검’ 원점 재검토론 ‘솔솔’”이라는 제목의 머릿기사에서 법조계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워 특검법 철회를 제기했다. 21일치 1면에선 “변협 ‘비비케이 특검법 위헌 소지 … 한나라, 청와대 거부권 행사해야”라는 기사를 냈다. 이날치 사설에선 ‘이명박 특검, 동력 잃었다’라는 제목으로 “특검법은 애당초 신당이 대선의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정략적인 반전용 카드로 꺼내든 것”이었다며 “정치적으로나 법리적으로나 특검의 동력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20일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사명’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당선자는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실시된 다섯 번의 선거에서 가장 높은 국민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 대선 사상 최대의 표차다. 그렇다면 당선자에 대한 특검을 의결했던 국회의 뜻은 당선자를 과반에 육박하는 표로 당선시킨 국민의 뜻과 배치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2, 3위와 표차가 배 이상 난 점을 들어 철회를 압박하고 있다.
중앙도 이날치 ‘국민의 머슴이 되라’는 사설에서 “새 대통령이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며 “이명박 특검도 그런 점에서 절제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음날치 사설에선 “선거는 선거이고 법은 법”이라며 한나라가 특검을 받으라고 주문해 조선·동아와는 다른 견해를 택했다.
대선미디어연대는 21일 ‘비비케이 사건’ 의혹과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특검 철회를 요구하고 일각에서는 진실규명을 주장하고 있으나 명백한 것은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언론은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언론들의 이런 보도에 대해 김평호 단국대 방송영상학부 교수는 “언론들이 권력의 풍항계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면서 공정성과 균형감각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문현숙 기자 hyunsm@hani.co.kr
화려하게 울려 퍼진 ‘명비어천가’
문현숙 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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