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재단은 10일 서울 언론회관 외신기자클럽에서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로 본 국제보도 시스템의 문제점’을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언론재단 제공
아프간 인질사태가 남긴 국제보도 문제점 토론회
2007년 한여름 40여일 간 무더위와 함께 한국인을 괴롭힌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는 희생자 2명을 뒤로 하고 21명이 전원 구출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현지 취재 불허에 따라 외신 의존서 비롯된 오보 남발, 가명 보도 등 한국 언론으로서는 많은 흠집을 남긴 사건이었다. 한국언론재단은 10일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로 본 국제보도 시스템의 문제점’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언론인들은 우리 시각의 실종을 자성하면서 국외지역 취재망 확대, 위험지역의 보도준칙 필요성 등 다양한 대안을 거론했다. 현지 한국 언론인 한명도 없어…외신에만 의존
‘알권리와 인질 안전’ 갈등…보도준칙 제정 의견 ■ 외신 받아쓰기에 오보 경쟁=주제 발표에 나선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우리 국민이 피랍됐는데 정작 우리 언론인이 현지에 한 명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며 “그러다 보니 지나친 외신 의존으로 ‘8명 석방’ ‘군사작전 개시’ 등 외신 오보조차 받아쓰기 경쟁이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또 “법으로 규정한 국가기간 방송사(한국방송)나 국가기간 통신사(연합뉴스) 등이 있지만 다른 언론사와의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언론사의 노력 부족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피랍자 2명이 먼저 석방됐을 때 “정부가 국내 안방에서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와 단독 인터뷰하게 해 준 것은 거꾸로 국가기간 언론사를 부정하는 일”이라며 정부의 비협조도 문제삼았다. 또다른 발제자인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 교수는 “23명이나 납치된 초유의 사건에 양적인 인력 부족과 질적인 경험·지식·인맥 부족”으로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못한 현실을 짚었다. 카이로에 특파원이 20명이나 되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평소에도 일반인들의 관심권 밖인 이 지역의 지면 반영은 이벤트성 보도나 화제성에 집중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지역 전문가 양성 △인질사태 등 긴박한 사안에 대한 보도준칙 마련 △한반도 4강 중심 외교 극복 △취재인력 양성을 위한 장기적 투자 등을 제안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현업 언론인들은 오보 등의 불명예 속에서도 이번만큼 많은 고민과 내부 격론이 컸던 사건도 드물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김승일 〈한국일보〉 국제부장은 “이번 아프간 사태는 우리식 시각을 실종시켰다”며 외국 통신사에 의존하는 바람에 우리 시각이 반영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또 김태선 한국방송 국제팀 기자도 이번 사건을 통해 가치의 충돌을 많이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와 피랍자의 안위 사이에서의 가치 충돌, 보도의 자유와 기자의 안위 사이에서의 충돌 등 다른 사건과 달리 보도국 내부에서도 기사 가치 판단에서 의견이 많이 엇갈렸다”고 말했다. ■ 분쟁지역 등 취재망 넓혀야=박중언 〈한겨레〉 국제뉴스팀장은 “일본 아사히신문은 기자가 3000명인데 우리나라는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그런 한계 속에서 순회특파원제 활용이나 평소부터 분쟁지역의 취재망을 넓혀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우량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는 “이번 인질사건의 승자는 탈레반이요, 패자는 한국정부와 한국언론”이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특히 한국언론은 △용기 △준비 △(역사적 맥락이 필요한) 전문지식 등 세 가지가 부족했음을 지적했다. 정부가 아프간행을 막았어도 ‘거부하는 몸짓’을 강력하게 하며 불굴의 기자 정신을 보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병국 〈연합뉴스〉 국제뉴스2부장은 “사건이 터지자 두바이 주재 아프간 영사관에서 비자를 받았으나 한국정부의 취소 요청으로 무산된 뒤 다방면으로 아프간 입국을 모색했으나 불발했다”며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문현숙 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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