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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미디어전망대] 학벌주의와 언론의 성찰

등록 2007-08-21 19:39

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미디어전망대
여기 두 가지 유형의 사회가 있다. 하나는 껍질을 벗기면 벗길수록 부패와 비리가 속속 드러나는 사회고, 다른 하나는 성찰과 반성을 할 줄 모르는 사회다. 둘 중 차악을 고르라면 전자의 썩은 사회를 택하겠다. 아무리 털어도 먼지조차 안 나면 최선이겠으나 여럿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없을 수는 없을 터. 그래서 허물의 존재 여부보다 그것에 대처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부패와 비리를 공개하는 것도, 그리고 성찰과 반성을 주도하는 것도 언론의 기능이다. 언론을 일컬어 사회의 ‘파수꾼’ 이니 ‘목탁’이라 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가짜 학위, 거짓 학력 현상을 보며 우리 사회는 차악을 넘어 최악의 상태임을 절감한다. 그 중심부에는 숙고할 줄 모르고 자기 눈의 티끌에 둔감한 언론이 있다.

문제의 ‘본질은 거짓말이지 학벌주의가 아니다’(〈조선일보〉 8월 20일치 외부칼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이 나서서 이를 주창하거나 매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거짓말이 닭인지, 학벌주의가 달걀인지는 누구도 확답할 수 없다. 다만 거짓말 (또는 단순 방조)도 사실이며, 학벌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 상황에서 언론이 거짓말이란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이미 만신창이가 된 개인을 탓하는 건 선정주의, 한술 더 뜨면 마녀사냥일 뿐이다.

엄존하는 학벌주의와 그 폐해를 애써 부인할 속셈이 아니라면 언론은 구구절절한 행위보다 뿌리 깊은 세태에 메스를 대야 한다. 더 정직한 언론이라면 이참에 학벌 만능 풍조를 조장하는 데 스스로 보탠 것은 없는지 살펴야 옳다. 외모지상주의와 더불어 학벌주의를 우리 사회의 출세 코드로 만드는 데 언론도, 아무리 느슨하게 쳐도 한몫 거들었기 때문이다.

무수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대학 관련 보도, 특히 입시철마다 되풀이되는 대학들 ‘줄 세우기’가 그 단적인 사례다. 고위직 인사의 신상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출신 고교와 대학명도 우리나라 언론이 아니고서는 찾아보기 힘든 관행이다. 아무런 ‘간판’도 없는 사람이 혹 입신양명이라도 하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영웅 만들기’ 보도도, 기실 무학력자 또는 저학력자는 실력도 뒤처진다는 차별의식의 소산이다. 그래서 ‘대학 안 나와도 성공한 프로들의 메시지’(〈중앙일보〉 8월 16일치)는 일견 학력보다 실력이 우선임을 강조한 듯 보이지만 거꾸로 학력에 대한 편견을 굳힐 뿐이다. 게다가 일부 언론은 이번 파문이 일기 전 문제의 인사들을 한껏 포장해 상품화한 전력도 있다.

언론이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의식세계에 끼치는 영향은 마치 ‘보슬비’와 같다. 대부분이 명문대 출신에, 요즘엔 그도 모자라 대학원까지 마친 경우가 즐비한 우리나라 기자들의 눈엔 별것 아닐지라도 학벌주의는 그렇게 물줄기를 이룬 것이다. 강원대 김세은 교수가 일본 기자의 입을 빌어 “한국 기자들은 너무 엘리트인데, 이것이…한국 언론과 사회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 것도 바로 그 맥락일 것이다(〈기자협회보〉 8월 17일).

그러고 보니 학력을 위장한 인사나 이를 손가락질하는 언론인들 모두 엘리트이며, 성찰하고 반성하는 데 인색하기 매한가지다. 이들이 한통속일 리야 없겠지만 이게 정녕 우연일까?

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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