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제용씨
스포트라이트 = 초대사장 송건호 선생 아들 송제용씨
‘부담’이자 ‘자랑’인 아버지
흉상 보며 출근 마음 다잡아
‘한겨레다운’ 콘텐츠로 승부 “이건희 삼성 회장과 당신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 “매일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을 보며 출근한다는 거지.” <한겨레>가 족벌신문이 아닌 건 다 아시죠? 그런데 국민주 신문 한겨레에도 최고경영자를 지낸 아버지에 이어 그 아들이 2대째 근무하고 있는 사례가 있답니다. 그 주인공은 1987년 한겨레의 창간을 주도하고 이듬해 초대 사장을 지낸 송건호 선생(2001년 별세)과 둘째 아들 송제용(42) 문화사업부장이랍니다. 송제용 부장은 광고회사 기획자를 거쳐, 두 군데 언론사를 찍고, 대학강단에도 잠시 섰다가 2003년 마침내 한겨레에 닻을 내렸습니다. 긴 여정, 어떻게 보면 참 공통점이 없어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극무대에 올랐던 고교 시절과 대학가요제 수상을 꿈꿨다는 그의 스무살 무렵을 함께 이음질하면 창의적 아이디어가 주 무기인 문화사업부문에 안착한 지금의 모습이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매일 아침 아버지 흉상을 보면서 출근하는 이의 기분은 어떨까요? 아버지 얘기를 꺼내자 열정적으로 얘기하던 그가 잠시 멈칫합니다. ‘부담’이라는 단어가 먼저 입에서 나옵니다. 물론 그에게 아버지는 ‘자랑’입니다. 그는 “창간을 앞두고 전국을 다니며 한겨레의 주식을 팔러 다니느라 피를 토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기억합니다. “내가 당신 아버지 보고 한겨레 주식을 샀다고 얘기하는 시골 주주분들을 만나면 뿌듯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그가 아버지를 부담으로 떠올리는 건 아들의 한걸음 한걸음에서 아버지를 읽어내려고만 하는 사람들의 시선 탓입니다. 송건호 선생이 세상을 떠나시던 날, 부음 기사에 ‘둘째 아들이 ○○신문사 광고국에 다닌다’는 얘기가 실렸습니다. 인터넷에는 비난 일색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고 하네요. “왜 그곳에서 일을 하느냐”, “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한다”는 전화가 많게는 하루 47통까지 걸려왔습니다. 이 부자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사뭇 다릅니다. 키와 몸집이 모두 아담했던 송건호 선생에 비해 송제용 부장은 ‘왕년에 운동깨나 했을 것’처럼 풍채가 좋습니다. “자식보다 책을 중히 여겼을 만큼” 조용하고 엄격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아들은 “1 대 1로 조근조근 얘기하는 것보다는 청중 앞에서 연설하는 게 더 자신 있다”는 쾌활한 성격입니다. 아들의 ‘다른 삶’은 아버지의 이름과 쉼 없이 비교되고, 때때로 아들은 “삐에로가 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렇다면 한겨레를 택한 게 아버지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고개를 젓습니다. “나는 나니까”라는 말, 마흔 살을 넘긴 한국 남성이 꺼내기엔 다소 멋쩍을 법도 하련만, 그는 당당히 쏟아냅니다. 그는 “실력으로 충분히 회사에 기여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한겨레에 가서 한 획을 그어보자”는 다짐이 있었기 때문에 한겨레를 택했다고 강조합니다. 입사 뒤에도 그는 조용히 일만 하는 쪽을 택하진 않았습니다. “날은 저무는데 (한겨레의) 갈 길은 멀기만 한 것 같아 보여” 뭔가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에 2005년엔 노조위원장직에 출마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는 광고국을 거쳐 지난해 3월 문화사업부장이 됐습니다. 아참, 송 부장이 일하고 있는 문화사업부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신문기사 다음으로 독자·주주들에게 가까이 있는 부서랍니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주거공간을 친환경적으로 조성하고 직접 만들어나가 독창적인 주거문화를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의 ‘대한민국 환경아파트 공모전’과, 세계적인 사진작가 그룹 ‘매그넘’의 작가들과 함께 20가지 주제의 한국을 촬영해 사진집으로 만드는 ‘매그넘이 본 대한민국’ 그리고 3·1절 마라톤 대회 등이 문화사업부에서 최근 하고 있는 사업들이랍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당장 돈이 되는 사업이라고 무턱대고 달려드는 건 도움이 안 된다”며 “하나를 해도 한겨레다운 문화사업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사업에 대한 소신을 밝힙니다. “굳이 남들 다 하는 오페라 공연을 하기보다는 아동극처럼 작지만 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걸 하고, 한겨레 지식 콘텐츠를 기반으로 다양한 포럼을 개최하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며 아이디어도 쏟아 냅니다. “그동안 대학생 선호도 1위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정작 대학생을 위해 문화사업을 해본 게 없다”며 반성도 뒤따릅니다. 앞으론 대학생들을 위해 ‘재미’있는 문화사업도 개발할 생각이라고 하네요. 한겨레의 독자, 잠재적 독자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 마음에 ‘한겨레는 이러하다’라는 특별한 이미지만 심어줄 수 있다면 “적자만 면해도 성공한 문화사업”이라고 그는 강조합니다. 새로운 문화사업 얘기가 나오니 송 부장의 목소리가 한층 커집니다. 아버지는 87년 민주화의 함성과 기대를 모아 한겨레 창간을 해냈습니다. 이제 아들은 ‘한겨레다운’ 문화 콘텐츠로 한겨레를 풍성하게 만들겠다고 하네요. 자, 앞으로 한겨레에서는 독자·주주 여러분들을 위해 어떤 문화사업을 펼쳐나갈까요? 두근두근 쿵쿵, 여러분 많~이 기대해주세요. 글 이정애 hongbyul@hani.co.kr/편집국 국내사회정책팀, 사진 김윤섭 outskirts@naver.com/<하니바람> 포토그래퍼
흉상 보며 출근 마음 다잡아
‘한겨레다운’ 콘텐츠로 승부 “이건희 삼성 회장과 당신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 “매일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을 보며 출근한다는 거지.” <한겨레>가 족벌신문이 아닌 건 다 아시죠? 그런데 국민주 신문 한겨레에도 최고경영자를 지낸 아버지에 이어 그 아들이 2대째 근무하고 있는 사례가 있답니다. 그 주인공은 1987년 한겨레의 창간을 주도하고 이듬해 초대 사장을 지낸 송건호 선생(2001년 별세)과 둘째 아들 송제용(42) 문화사업부장이랍니다. 송제용 부장은 광고회사 기획자를 거쳐, 두 군데 언론사를 찍고, 대학강단에도 잠시 섰다가 2003년 마침내 한겨레에 닻을 내렸습니다. 긴 여정, 어떻게 보면 참 공통점이 없어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극무대에 올랐던 고교 시절과 대학가요제 수상을 꿈꿨다는 그의 스무살 무렵을 함께 이음질하면 창의적 아이디어가 주 무기인 문화사업부문에 안착한 지금의 모습이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매일 아침 아버지 흉상을 보면서 출근하는 이의 기분은 어떨까요? 아버지 얘기를 꺼내자 열정적으로 얘기하던 그가 잠시 멈칫합니다. ‘부담’이라는 단어가 먼저 입에서 나옵니다. 물론 그에게 아버지는 ‘자랑’입니다. 그는 “창간을 앞두고 전국을 다니며 한겨레의 주식을 팔러 다니느라 피를 토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기억합니다. “내가 당신 아버지 보고 한겨레 주식을 샀다고 얘기하는 시골 주주분들을 만나면 뿌듯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그가 아버지를 부담으로 떠올리는 건 아들의 한걸음 한걸음에서 아버지를 읽어내려고만 하는 사람들의 시선 탓입니다. 송건호 선생이 세상을 떠나시던 날, 부음 기사에 ‘둘째 아들이 ○○신문사 광고국에 다닌다’는 얘기가 실렸습니다. 인터넷에는 비난 일색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고 하네요. “왜 그곳에서 일을 하느냐”, “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한다”는 전화가 많게는 하루 47통까지 걸려왔습니다. 이 부자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사뭇 다릅니다. 키와 몸집이 모두 아담했던 송건호 선생에 비해 송제용 부장은 ‘왕년에 운동깨나 했을 것’처럼 풍채가 좋습니다. “자식보다 책을 중히 여겼을 만큼” 조용하고 엄격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아들은 “1 대 1로 조근조근 얘기하는 것보다는 청중 앞에서 연설하는 게 더 자신 있다”는 쾌활한 성격입니다. 아들의 ‘다른 삶’은 아버지의 이름과 쉼 없이 비교되고, 때때로 아들은 “삐에로가 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렇다면 한겨레를 택한 게 아버지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고개를 젓습니다. “나는 나니까”라는 말, 마흔 살을 넘긴 한국 남성이 꺼내기엔 다소 멋쩍을 법도 하련만, 그는 당당히 쏟아냅니다. 그는 “실력으로 충분히 회사에 기여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한겨레에 가서 한 획을 그어보자”는 다짐이 있었기 때문에 한겨레를 택했다고 강조합니다. 입사 뒤에도 그는 조용히 일만 하는 쪽을 택하진 않았습니다. “날은 저무는데 (한겨레의) 갈 길은 멀기만 한 것 같아 보여” 뭔가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에 2005년엔 노조위원장직에 출마하기도 했으니까요.
송제용씨
그는 광고국을 거쳐 지난해 3월 문화사업부장이 됐습니다. 아참, 송 부장이 일하고 있는 문화사업부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신문기사 다음으로 독자·주주들에게 가까이 있는 부서랍니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주거공간을 친환경적으로 조성하고 직접 만들어나가 독창적인 주거문화를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의 ‘대한민국 환경아파트 공모전’과, 세계적인 사진작가 그룹 ‘매그넘’의 작가들과 함께 20가지 주제의 한국을 촬영해 사진집으로 만드는 ‘매그넘이 본 대한민국’ 그리고 3·1절 마라톤 대회 등이 문화사업부에서 최근 하고 있는 사업들이랍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당장 돈이 되는 사업이라고 무턱대고 달려드는 건 도움이 안 된다”며 “하나를 해도 한겨레다운 문화사업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사업에 대한 소신을 밝힙니다. “굳이 남들 다 하는 오페라 공연을 하기보다는 아동극처럼 작지만 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걸 하고, 한겨레 지식 콘텐츠를 기반으로 다양한 포럼을 개최하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며 아이디어도 쏟아 냅니다. “그동안 대학생 선호도 1위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정작 대학생을 위해 문화사업을 해본 게 없다”며 반성도 뒤따릅니다. 앞으론 대학생들을 위해 ‘재미’있는 문화사업도 개발할 생각이라고 하네요. 한겨레의 독자, 잠재적 독자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 마음에 ‘한겨레는 이러하다’라는 특별한 이미지만 심어줄 수 있다면 “적자만 면해도 성공한 문화사업”이라고 그는 강조합니다. 새로운 문화사업 얘기가 나오니 송 부장의 목소리가 한층 커집니다. 아버지는 87년 민주화의 함성과 기대를 모아 한겨레 창간을 해냈습니다. 이제 아들은 ‘한겨레다운’ 문화 콘텐츠로 한겨레를 풍성하게 만들겠다고 하네요. 자, 앞으로 한겨레에서는 독자·주주 여러분들을 위해 어떤 문화사업을 펼쳐나갈까요? 두근두근 쿵쿵, 여러분 많~이 기대해주세요. 글 이정애 hongbyul@hani.co.kr/편집국 국내사회정책팀, 사진 김윤섭 outskirts@naver.com/<하니바람> 포토그래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