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의 국경선은 일직선으로 뻗지 않고 툭 튀어나와 있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지도 위에 국경선을 긋다가 팔꿈치가 흔들려 그렇게 됐다고 한다. ‘윈스턴의 팔꿈치’는 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아랍의 국경을 얼마나 작위적으로 획정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곤 말한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는 역사적 근거가 있고, 그 씨앗을 뿌린 것은 당시 다국적군으로 결집한 서구세력이라고. 1991년 2월7일치 〈시사저널〉 67호 ‘커버스토리’에 실린 내용이다. 당시 국내 대부분의 언론은 서방 통신에 기대어 걸프 전쟁의 원인을 후세인의 영토적 야심으로 해석했다. 아랍의 시각에서 사태의 본질에 접근한 언론은, 내 기억에 〈시사저널〉이 유일했다.
그 〈시사저널〉이 1987년 창간 이후 처음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경영진은 이에 직장폐쇄라는 극단적인 조처를 취했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장은 인쇄 과정으로 넘어간 삼성 관련 기사를 편집국 동의 없이 무단 삭제했다. 삼성은 금권으로 경영진을 압박하고, 경영진은 자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보도를 희생한 격이다. 자본은 이처럼 언론자유를 통째로 집어삼키고도 남을 위력을 지니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언론계는 마치 폭풍전야 같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몰아치면서 지각변동을 일으킬 조짐이 뚜렷하다. 밖으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안으로는 방송통신(방통) 융합이 그 온상이다. 문제는 그 어디에서도 자본의 약육강식 논리를 제어할 의지와 지혜를 찾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자유무역협정 협상에 관해서는 ‘혹시나’ 하는 기대가 ‘역시나’란 배신감으로 다가온다. 문화주권과 직결된 방송영상 시장 개방이 막판 ‘빅딜’의 유력한 카드로 확인된 탓이다. 방송정책 주무기관인 방송위원회는 우리 쪽 협상 주무부처이자 방송 문외한인 외교통상부와 재정경제부의 종용에 동하고, 이들 부처는 미국 협상단의 요구에 밀린 꼴이다. 그 배후에 우리나라 미디어 시장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다국적 기업이 있음은 말하나 마나다.
지지부진하던 방통융합은 최근 들어 잰걸음 중이다. 지난 3일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19일 ‘방통특위 구성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특위 위원만 구성되면 법안 처리를 위한 본격적인 심의와 국회통과 절차에 들어간다.
방통융합은 방송과 통신이라는 이질적 영역을 단일한 규제체계로 통합하는 일이다. 여론과 문화풍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현재의 법안도 전문성, 효율성, 공공성 등을 두루 감안해 마련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정치적 독립성이 취약하다며 독자 입법까지 검토하고 있다. 미디어의 정치적 독립은 자본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선결요건이다. 우리 사회에 유독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정경유착’과 날로 위세를 부리는 ‘관벌(관료+재벌)’을 염두에 둘 때 더욱 그렇다.
과거의 〈시사저널〉 보도에서 여론의 다원성을 기억한다. 현재의 〈시사저널〉 사태에서는 자본의 천박성과 위험성을 절감한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는 방송시장 개방과 방통융합이 초래할 미래를 설계하는 단서로 작용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시사저널〉 기자들이 거리에서 우리 언론계를 향해 울리는 경종이다.
김재영 /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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