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미디어전망대
색깔 덧칠하기가 본격화되었다. 조직적인 이념 공세다. ‘신공안정국’ 조성의 분위기마저 비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지원위원회’ 위원장 내정자인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가 ‘반미 단체’들이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고 나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국익’에 유리하다는 “딱 하나뿐인 진실”을 말하는 정부와 수구신문 외에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같은 시기 시작된 수구매체의 색깔론과 절묘하게 겹친다. 수구냉전적 신문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가 발행한 ‘국민 보고서’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파문”이라고 풀이한다. 불온서적인 양 매도하고, 위험한 빨간책이라 낙인찍는다. 그럼으로써 좀더 정확한 이해와 판단을 하고자 하는 많은 시민들의 선택을 방해한다. 책 내용이 “흡사 북한의 대남 방송 리플레이인 듯”하다는 〈문화일보〉의 섬뜩한 사설이 그 일례다. “학자인 체” 하는, “한마디로 지적 양심을 저버린 사람들”이라고 비아냥대는 〈조선일보〉의 사설에서 극치를 이룬다.
왜곡과 과장, 조작이 설친다. 과거 공안당국이 흔히 쓰던 말투 그대로다. 신문들이 몇몇 교수의 글 중 일부 문장을 증거로 내세우는 게 딱 그렇다. 한마디로 지적인 사회 소통,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야만적 선전 공세, 억압적 검열 행위다. 물어보자. 책을 제대로 읽기나 했는가? 만약 그랬다면 집필자 모두를 소위 “글로벌 트렌드를 철저히 부정하는” 반미주의자로 몰 수는 없을 것이다. 선동하는 것은 진실 규명의 노력에 참여한 학자들이 아니다. “80년대 남미 주민으로 착각하는 반FTA 선동가들”, “‘한-미 FTA 저지’의 실체는 반자본주의·반미”, “FTA 반대인가 친북 반미 선동인가”라는 신문들이 바로 비이성적 선동꾼들이다. “북한보다 더 북한 같은 반FTA 좌파 세력”이라고 재단하는, 책이 잘 팔리는 것을 두고 “좌파의 깊은 뿌리를 실감케 한다”고 한 〈동아일보〉가 정확하게 선동 중이다. ‘범국본’을 구성하는 수백 개 시민사회단체와 학계, 〈PD수첩〉과 〈한겨레21〉 같은 비판적 저널리즘, 그리고 인터넷 등을 통해 반대 의사를 밝히고 나선 시민 모두를 친북세력으로 몰겠다는 것인가?
‘공화국’이라는 표현을 갖고 반공이념 공세를 펼치는 대목에서는 그 무식의 소치에 정말 기가 질린다. 정치사상사적인 맥락에서 민주주의 위기 문제를 논하고자 한 저자의 개념어를 완벽하게 왜곡한다. “민족과 반미를 횡단해” 민주주의 구원에 나서자는 저자를 어떻게 반체제 인사로 둔갑시킬 수 있나?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사상가였던 한나 아렌트는 국가의 ‘조직적 거짓’을 비판하면서 〈공화국의 위기〉라는 유명한 책을 내놓았다. 그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청중이 듣고 싶어 하고 기대하는 것을 곧바로 알게 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한 이점”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반면 “진실은 준비를 해오지 않았음으로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예기치 않았던 일에 부딪혀 항상 당황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고 했다.
과연 지금 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진실 발견 노력을 통해서 ‘대한민국’ 공화국과 그 민주적 체제 안녕에 기여하고 있는가? 누가 체계적 거짓, 일방적 홍보로 공화국의 질서를 위험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위협하는가? 선전은 빠지고, 이성만 나서라.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eunacom@knu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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