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운영 전 논설위원 부인 박양선(왼쪽)씨가 고인의 장서 2만여권을 서울대에 기증한 뒤 정운찬 총창한테서 감사패를 받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대, 부인에 감사패
“종이책을 절실히 사랑한 마지막 사람이 아닐까 한다.”
소설가 조정래씨는 지난해 9월 타계한 고 정운영 전 한겨레 논설위원을 이렇게 회고했다.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로 <한겨레>와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정운영 위원이 남긴 책은 2만여권에 이른다. 이 많은 책을 사 모으느라 가족은 평생 전세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했다. 가족들은 그의 ‘밥이자 혼’이던 책 가운데 1만5425권을 올 4월과 6월 서울대에 기증했고, 정리되는 대로 1천여권을 더 기증할 예정이다. 나머지 5천여권은 가족들이 보관하기로 했다.
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18일 오후 정 위원 부인 박양선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정 총장은 “학창시절 정 위원이 서울대 상대신문 기자로 쓴 기사를 스크랩해 둘 정도로 개인적으로 그를 좋아했다”며 “2000년 한 월간지에서 정 위원과 내가 함께 있는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우정을 소개했다.
정 위원과 터놓는 친구 사이였다는 조정래씨는 “만약 정형이 책을 사지 않았다면 집안 형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고, 더 오래살지 않았을까 한다”며 “기증된 책들은 정형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조씨는 “정형은 그 많은 책을 모두 읽었다”며 “정인보 선생과 최남선 선생은 등불이 꺼진 상태에서도 원하는 책을 서가에서 정확히 찾아낼 수 있었다는데, 정형도 그런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조씨는 “4년 전쯤에 정형과 유럽여행 갔다 서점에 들렀는데 체 게바라 관련 책이 54종이 있었다. 아무리 관심이 있는 사람도 대여섯권 사고 말 텐데 정형은 신용카드로 54권 모두 샀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일시적으로 신용불량자가 돼 있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행사에는 유족과 조씨 외에 고인과 우정을 나눴던 <한겨레> 정태기 대표, 권근술 전 대표, <중앙일보> 홍석현 전 회장, 권영빈 사장 등이 참석했다.
글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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