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풋살팀 공좀하니 선수들이 지난 1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 실내풋살장에서 열린 제1회 기자협회 여성회원 풋살대회 4위를 기록한 뒤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었다.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었다.
한겨레 풋살팀 공좀하니가 지난 1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 실내풋살장에서 열린 제1회 기자협회 여성회원 풋살대회를 최종 4위로 마쳤다. 이번 대회는 기자협회 창립(1964) 59년 만에 처음 열린 여성 기자 전용 체육 대회였고, 공좀하니는 <한겨레신문> 창간(1988) 35년 만에 처음 결성된 여성 풋살팀이었다. 사정이 다를 바 없는 신생팀 열두 팀이 출사표를 냈고, 반세기 만에 해금된 미지의 전장에서 한겨레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썼다.
공좀하니 남지현이 승부차기에서 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시작은 난항이었다. 더팩트, 아주경제와 D조로 묶인 한겨레는 조별예선에서 2무를 기록하며 승점 2점을 따내는 데 그쳤다. 윤연정(사회부)을 최전방 타깃으로 세우고, 김혜윤(사진부)과 남지현(경제산업부)을 빌드업 축으로 장현은(사회정책부)을 최후방 리베로에, 장수경(스페셜콘텐츠부)을 수문장에 낙점한 베스트 5를 가동했으나, 득점도 실점도 없이 고전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이제 긴장 풀 때가 됐다”는 류석우(한겨레21부) 코치의 격려는 좀처럼 몸속에 스미지 못했다.
운마저 따라주지 않았다. 더팩트와 1차전, 전반 초반부터 윤연정과 김혜윤, 남지현 삼각편대를 위시한 파상 공세가 이뤄졌으나 결실을 보지 못했다. 하프타임 직전 킥인 상황에서 남지현이 상대 문전에 바투 붙인 킥에 윤연정이 발을 갖다 대며 반대쪽으로 튀었고, 김혜윤이 반 박자 빠른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했으나 공은 골대 크로스바를 맞고 나왔다. 점유율과 슈팅 숫자 등을 압도한 흐름 속에서도 경기는 0-0으로 끝났고, 아주경제와 2차전도 마찬가지였다.
한겨레 남자축구팀 선수 겸 총무 겸 감독인 박정민(종합편집부)은 “(경기가) 우리(남자팀)보다 더 쫄깃쫄깃하다. 골이 안 들어가는 건 우리랑 똑같다”라고 동질감을 표했다.
아주경제와 조별예선 2차전을 앞두고 한겨레 응원단이 기선제압 행진을 벌이고 있다. 맨 앞줄부터 김경락 경제산업부장, 최우성 대표이사, 안재승 전무이사가 차례로 토끼, 유니콘, 외계인 복장을 하고 응원전을 주도했다. 공좀하니 박지영은 “응원전은 우리가 이긴 것 같다”라고 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경우의 수’를 고려할 때 한겨레가 조별예선을 통과하는 경로는 하나뿐이었다. 남은 3차전에서 더팩트와 아주경제가 득점 없이 비겨 세 팀이 승점에 골 득실, 다득점, 승자승까지 동률을 이룬 뒤 승부차기에서 이기는 길이다. 벤치와 응원석이 차게 식은 정오의 공기 속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선수들은 페널티킥 훈련을 위해 운동장으로 향했다. “이미 마음은 조박집(회식 장소)에 가 있다”던 장현은도, “우리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면 안 되는데”라던 주장 남지현도 차분하게 다음 기회를 준비했다.
누군가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던 걸까. 바늘구멍은 대로가 되어 한겨레 앞에 나타났다. 더팩트와 아주경제는 무득점 공방 속에 3차전을 비겼고, 세 팀이 승부차기(3인)에 돌입했다. 승부차기 대진에서 두 팀을 연거푸 꺾어야 하는 과업을 받아든 한겨레는 ‘준비한 대로’ 승부에 임했다. 1·2라운드 모두 심리적 압박이 더 심한 후축을 맡았음에도 한겨레의 1·2번 키커 남지현과 김혜윤은 각각 좌우를 예리하게 공략하는 킥으로 실축 없이 연달아 골망을 흔들었다.
이어 방점을 찍은 히어로는 장수경이었다. 앞선 조별예선에서도 고비마다 과감한 판단과 특출난 반사신경으로 여러 차례 ‘구국의 세이브’를 보여줬던 장수경은 승부차기 1라운드(아주경제)에서 두 번, 2라운드(더팩트)에서 한 번 상대의 킥을 막아내며 ‘선방 쇼’를 펼쳤다. 2라운드 더팩트 5번 선수의 킥을 선방하고 이어 김혜윤이 킥을 성공하며 4강행을 확정짓자 주전과 벤치, 선수와 코치, 임원과 직원을 가리지 않고 현장의 한겨레인 모두가 장수경 주위를 에워싸고 방방 뛰었다.
공좀하니 장수경(왼쪽)이 4강행을 결정짓는 더팩트와 승부차기 2차전 승리가 결정되자 장현은에게 뛰어가며 환호하고 있다. 장수경은 경기 뒤 “현은이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최종 수비수와 골키퍼는 한 몸 같은 존재인데, 현은이가 (오늘 경기에서) 너무 긴장한 거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라고 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후 한겨레는 C조 1위 시비에스(CBS)와 4강전에서 0-2로 졌고, 3·4위를 가리는 중앙일보와 승부차기에서도 1-2로 패하면서 4위 트로피(상금 20만원)를 받아들었다. 당초 목표로 내걸었던 ‘초대 챔피언’의 야심은 무산되었으나 값진 성취였다. 류석우 코치는 “연습했을 때 실력을 100이라고 하면 한 30 정도 밖에 발휘를 못 한 거 같다”라며 “우리 팀이 개인 실력이나 재능은 가장 높다고 보는데, 저의 코칭이나 훈련이 부족해서 잠재력을 끌어내지 못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트로피는 지난 130여일 공좀하니 팀의 여정 속에서 여물어온 단단한 전우애에 대한 표창이었다. 공좀하니는 지난 2월 어느 날 ‘스핑크스 회동’을 통해 결성된 이래 네 달간 34번의 연습을 진행하며 정진해 왔다. 나흘에 한 번꼴로 공을 놓지 않은 셈이다. 여성용 사이즈에 맞는 풋살화를 구하는 일부터 매 순간 난관의 연속이었고, 훈련일지는 부상일지나 다를 바 없었다. 물집과 타박은 다반사였고, 근육, 인대를 다쳐 반깁스했던 선수도 여럿이었다.
열정과 애정 없이는 불가능했을 지난 넉 달이다. 이날 교체와 선발로 세 경기를 뛴 박지영(사회부)은 “지난 1년 동안 가장 땀을 많이 흘린 날”이라면서 “가장 행복한 팀은 가장 잘하는 팀이 아니라 즐기는 팀이더라”라며 ‘논어’의 가르침을 설파했다. 오른발에 반깁스하고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본 박현정(사회정책부)은 “(오늘 느낀) 이 감정이 뭔지 모르겠다.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라며 팀 스포츠의 형용할 수 없는 희열에 대해 고백했다.
공좀하니 선수진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공좀하니의 첫 챕터를 결산하는 뒤풀이 자리는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눈물 바다가 되었다. ‘스핑크스 회동’ 멤버이기도 한 손지민(전국부)은 건배사에서 눈물 자국 번진 눈으로 “한겨레 오늘 어땠지?”를 선창했고, 멤버들은 “아 잘했지!”를 후창했다. 공좀하니 팀은 약 한 달간 여름 정비 시간을 가진 뒤 내년 대회 첫 득점, 첫 승리, 나아가 첫 우승을 향한 도전을 재개할 예정이다. 가장 근접한 일정은 엠티(MT)로 알려졌다.
한편, 기자협회에서 각 사 시상팀 부상으로 준비한 티셔츠, 운동화는 대부분 에스(S), 엑스에스(XS) 사이즈로, 착용하기 어려운 물건들인 점이 밝혀져 원성을 샀다.
<기자협회 풋살대회 한겨레 공좀하니 명단>
이지은(감독) 뉴스서비스부 뉴스서비스팀
이주현(단장) 뉴스총괄
류석우(코치) 한겨레21부 취재3팀
남지현(주장) 경제산업부 금융팀
김윤주 사회정책부 인구복지팀
윤연정 사회부 이슈팀
손지민 전국부 전국팀
임지선 경제산업부 빅테크팀
김혜윤 사진부 사진뉴스팀
권지담 사회부 법조팀
정인선 경제산업부 빅테크팀
김지숙 뉴스서비스부 오픈데스크팀
장수경 스페셜콘텐츠부
젠더팀 박지영 사회부 이슈팀
장현은 사회정책부 노동교육팀
장예지 정치부 통일외교팀
박현정 사회정책부 인구복지팀
파주/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