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부터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고동희·최석인씨 부부와 딸 서의양. 고동희씨 제공
서의야, 네가 자라면서 이 편지를 몇 번쯤 읽어 보게 될까. 엄마는 벌써부터 기대가 돼. 서의가 한글을 깨치고 나서 한 번쯤, 초등학생 때 몇 번, 20대와 30대를 거치며 한 두 번, 그리고 그 이후의 인생에서 또 한 두 번쯤 읽게 되려나, 아니면 한 번쯤 읽고 잊게 되려나. 어느 쪽이든 괜찮아, 엄마는 지금의 엄마 마음을 이렇게 글로 전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정말 감사하고 행복해.
엄마와 서의가 만나기까지 모든 것이 쉽지는 않았어. 네가 엄마 뱃속에 있는 동안, 자궁근종이라는 녀석들이 같이 있었거든. 서의도 쑥쑥 자랐는데, 그 녀석들도 쑥쑥 자라는 바람에 엄마 배가 꽉 차게 되었지 뭐야. 엄마 뱃속이 너무 좁았던지 서의가 조금 빨리 나오고 싶었나봐. 엄마도 널 빨리 만나고 싶었지만, 그래도 뱃속에서의 시간을 차곡차곡 잘 쌓아야 태어나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에, 널 빨리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엄마는 한참동안 병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어. 너두 잘 버텨줘서, 건강하게 세상에 나와줘서 우리가 무사히 만날 수 있었단다! 아주 기특해!
엄마가 손수 만든 나뭇잎 원피스를 입고 동화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주인공 요정으로 변신한 최서의 아기. 고동희씨 제공
지난해 10월 핼러윈데이 때 엄마가 만들어준 옷을 입고 빗자루 요정으로 변신한 최서의 아기. 고동희씨 제공
사계절 따뜻한 싱가포르에서 처음 맞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도 엄마가 만든 옷과 장식으로 차려 입은 최서의 아기. 고동희씨 제공
그렇게 서의가 세상에 나온 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고, 네가 기억할 수도 있는 첫번째 어린이날을 맞이했구나.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디서 살고 있게? 정답은, 싱가포르! 우리 가족은 코로나 대유행의 와중인 2021년 7월 엄마의 직장을 따라 싱가포르로 이사를 왔거든. 물론 한국의 사계절도 정말 아름답고, 서의를 너무나 사랑해 주시는 할머니·할아버지·외할머니·외할아버지·고모·삼촌·이모들이 있는 한국이 좋아서 엄마아빠는 고민이 많았어. 다만 서의가 아직은 잘 모를 수 있는 엄마,아빠의 인생에 대한 계획과 기대가 있었다고 생각해줘.
엄마와 아빠는 지금 싱가포르에서의 삶에 너무나 감사해. 서의가 언제라도 밖에서 뛰어 놀 수 있는 따뜻한 날씨, 깨끗한 공기, 안전한 사회…, 서의가 자라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 되어주는 것 같아. 뜨거운 햇살도, 퍼붓는 비도, 영화처럼 내리 꽂는 번개도, 화물을 실은 큰 배들이 둥둥 떠 있는 파란 바다도, 서의가 살고 있는 지구를 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주는 것 같아.
아! 그리고 여기서는 한국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지? 쓰는 말도 다양하고 말이야.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 덕분에, 서의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될 것 같아. 여기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생김새와 언어에 대한 편견 없이 모두를 사랑하고,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마음과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태어난 이후로 지금까지 하루하루 경이롭고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서의야. 눈 앞에서 쑥쑥 크고 있는 서의가 정말 대견하고, 이 멋진 시기를 네가 훗날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어서 너무 아쉬워. 하지만 예쁘고 복된 너의 날들은 엄마가 기록하고 기억해 줄게.
“서의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 엄마한테 와 줘서 고마워. 서의 덕분에 엄마 인생이 더 풍성해졌어.” 이런 상투적인 말들을 엄마는 쓰지 않을 줄 알았거든? 그런데 이런 말들이 정말 하나하나 엄마의 진심이 되었어. 더 멋진 말들로 엄마의 마음을 전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한 자 한 자 엄마 진심으로 꾹꾹 눌러서 전하고 싶어. 사랑해 서의야, 건강하게 자라줘!
싱가포르/엄마 고동희·아빠 최석인
원고료를 드립니다-<한겨레>는 1988년 5월15일 창간 때 돌반지를 팔아 아이 이름으로 주식을 모아준 주주와 독자들을 기억합니다. 어언 35년째를 맞아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되고 있습니다. 저출생시대 새로운 생명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축하합니다’는 새 세상을 열어갈 주인공들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또 함께 성장해온 주주들에게는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나 축하의 글을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또는 인물팀(peop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