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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마음 한 장: 겨울] 안녕, 배트맨!

등록 2021-12-21 04:59수정 2022-12-20 09:27

2021년, 여러분이 웃고 울었던 현장에 <한겨레> 사진기자들도 있었습니다. 한 해를 끝자락까지 그 마음에 남은 사진 한 장들을 모았습니다.

새해에도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마음을 잇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2021년 마음 한 장'을 봄·여름·가을·겨울로 묶어 소개합니다.

#11 안녕, 배트맨!

1991년 11월7일 서대문구 영천동 재개발 현장에서 어린이들이 손가락으로 배트맨 가면을 만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1991년 11월7일 서대문구 영천동 재개발 현장에서 어린이들이 손가락으로 배트맨 가면을 만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얼음장 같은 칼바람이 불던 1990년 12월 3일, 영등포구 양평동 공장지대 한 귀퉁이에 있는 건물을 빌려 신문을 찍고 있던 한겨레신문사로 첫 출근했다. 당시는 흑백 필름으로 찍고 현상, 인화를 직접 해야 하던 시절이라 사진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시작한 사진기자 생활. 수습을 떼자마자 하루에도 몇 군데씩 시위, 집회 현장을 취재하며 최루탄과 함께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노동자, 도시빈민, 학생, 농민 등 폭압적인 군사정권 아래서 억눌리고 짓밟힌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유일한 매체가 <한겨레>였기에.

번쩍이는 강철의 거대한 윤전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굉음을 다 토해내고 나면, 양평동의 밤을 밝히던 신문사의 불빛도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북새통 같은 마감과 저물녘의 석양주로 하루를 매듭지은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고, 사진기자 홀로 남아 오롯이 지새우던 편집국의 밤. 철야를 마치고 나면 주어지는 24시간의 휴식시간, 주체하기 힘든 엄청난 선물 같았다. 더러는 잠에 취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유난히 눈에 밟히는 현장들이 있어서다. 잠깐 동안의 취재로는 다 담아내지 못하는 삶의 현장이.

뽀오얀 먼지를 덮어쓴 채 신문사 자료실에 잠들어 있는 필름을 들추다 보면, 올빼미처럼 밤을 새우고 토끼눈을 하고서 돌아다니던 그날의 시간들이 후드득, 소리 내며 깨어나기도 한다. 신문에는 싣지 못했던, 가슴 아린 삶의 조각과 사람들이. 흑백으로 남아있는 그때 그이들에게 뒤늦은 안부 인사를 보낸다.

서울의 달동네를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다 뒤집어엎던 30년 전 이맘때. 어른들은 철거용역 깡패들과 싸우면서, 아이들은 무너진 집터를 놀이터 삼아 뛰어다니며 지낸 하루 또 하루들. 1991년 11월7일 서대문구 영천동에서 그대들을 만났네요. 30년 만에 안부 물어요, 그동안 모두 어떻게 지내셨는지. 동그랗게 만 손가락 사이로 보이던 ‘세상의 악함’은 줄어들었는지, 달팽이처럼 소라게처럼 지상의 집 한 칸은 마련들 했는지, 그대들을 살뜰히 챙기시던 어머님은 지금도 건강하신지… 여전히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어서, 미안합니다. 사진기자가 된 첫해에 만났던 그대들에게, 이제 이 일 마무리하면서 뒤늦은 인사를 보냅니다. 모두 강건하게, 잘 지냅시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12 반가워 친구야! 이제 매일 보자

초중고 전면 등교가 시행된 11월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동 금양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며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초중고 전면 등교가 시행된 11월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동 금양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며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긴 겨울방학∙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는 날의 여느 초등학교 등교 풍경이 아니다. 지난 11월 22일부터 ‘위드 코로나’가 시행되면서 전면등교가 시행되었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학년마다 다르지만, 며칠 만에 보는 친구가 반갑고 이제 매일 친구를 볼수 있게 돼 기쁜 마음에 와락 친구를 끌어안은 게다.

한창 친구 좋아하고, 얼굴 맞대고 이런저런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힘겨운 시간들이 지나가고, 조그만 숨통이 트이는가 했다. 웬걸 코로나 바이러스 델타 변이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오미크론까지. 다시 일상이 위협받는 지금, 내년에는 정말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올해 2021년 내 마음속 한 장을 뽑아본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3 마스크로 숨길 수 없는 마음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학교가 전면등교를 시작한 11월 22일 낮 서울 마포구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학교가 전면등교를 시작한 11월 22일 낮 서울 마포구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20년 2월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만 해도 2년 가까이 이렇게 전 세계를 집어삼킬 큰 전염병이 될 줄은 몰랐다.

출산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난해 봄, 회사의 재택근무 방침으로 사무실에 돌아오지 못한 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이어갔다. 집안에서 아이를 기르며 내가 현장에 다시 복귀할 때에는 이 코로나도 끝나겠지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복직하고도 코로나는 여전히 그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들이 제일 맘에 걸렸다. 한창 커나갈 나이에 코로나로 집안에 있어야 하다니….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수도권 초등학생들도 전면 등교를 하게 된 지난달 22일, 힘차게 운동장을 달리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마스크에 가리지 않는 희망을 봤다. 그 너머로 새어나오는 생명력을 어찌 바이러스가 막을쏘냐. 사진 속 아이들에게 우리에게 주문처럼 말 건네본다. ‘우리 조금만 더 버티자. 그러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스크를 벗고 힘차게 달릴 수 있을거야.’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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