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5시17분께 제주 서귀포시 서남서쪽 해역에서 일어난 지진과 관련해 잘못된 사진을 내보낸 <뉴스1>과 <중앙일보>가 15일 정정보도를 내고 독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재난보도 때마다 반복되는 오보들이 속보 경쟁과 사실 검증의 규율 부재 등이 빚어낸 ‘구조적 오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영통신사인 <뉴스1>은 15일, 전날 서비스했던 ‘지진 충격에 쪼개진 제주 해안도로’ 제목의 사진이 해외 자료 사진임이 확인됐다며
사진을 삭제·정정하고 사과했다. <뉴스1> 관계자는 “14일 지진 발생 이후 사진이 들어왔고, (사진 받은 기자에게) 출처를 물어보니 그 가족의 지인이 ‘모슬포다’라고 했다고 했다. (지진이 일어난 뒤라) 팩트라고 생각했다. 마감 시간도 쫓기고 있었다. 사진을 송고한 다음 오후 6시께 크로스체크에 나서 제주시청 등을 통해 확인한 뒤 밤 8시30분께 계약사들에 연락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 시점은 <중앙일보>가 초판 1면에 이 사진을 싣고 이미 인쇄를 끝낸 다음이었다. <중앙일보> 관계자는 “오후 6시30분께 이 사진이 들어와 제주 지역에 배달되는 초판에 실었다. 통신사 사진이라 의심을 하지 못했다. 오보 사진임을 연락받고 다음 판에 사진을 교체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곧 정정보도와 사과문을 낼 예정이다.
사실 이 사진은 지진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돼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 해안도로가 지진의 영향으로 깊게 균열됐다”라는 설명과 함께 돌았던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도로 주변의 수풀 사진은 제주도의 수풀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모슬포 해안도로에는 농경지와 바다, 야트막한 나무들이 보일 뿐 이처럼 울창한 모습의 수풀은 보이지 않는다. 또 하얀색 차선이 두 줄로 나오는 사진과 달리 모슬포 해안도로의 차선은 한 줄이다. 이 사진이 해외 사진이라곤 하나, 진짜 지진에 의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이 사진을 일본 아오모리현 지진 속보에 붙여 쓴 한 국내 언론사 기사를 보면, 사진 등 이미지를 서비스하는 ‘게티이미지’ 자료 사진이라고 설명이 달려있다.
제주도청 공무원들은 사진 오보를 막느라 14일 자정까지도 퇴근하지 못했다고 한다. 도청 관계자는 “서귀포시청 관련 부서에서 ‘해당 사진이 모슬포 해안도로가 아니다. 현장을 확인한 결과 사진과 같은 해안도로가 없다’고 알려오고, 우리도 자체적으로 확인한 결과 오보 사진임이 드러나 언론사 쪽에 정정 협조를 요청했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확인하지 않고 쓸 수 있는지 황당하다”고 말했다.
정은령 SNU 팩트체크 센터장은 “자연재해의 순간에 기자가 현장에 있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드물기 때문에 기자가 직접 현장에서 목격하며 촬영하지 않은 제보 영상들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시민과의 협업의 의미도 크다.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하지 않은 제보 영상을 어떤 인물로부터 받거나, 특히 더 위험하게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캡처해서 쓸 경우, 반드시 이것이 1차 자료인지 자료를 올린 최초의 사람이나 현장을 목격한 사람과 접촉해 교차 검증해야 한다”며 이번 일이 “속보 경쟁, 사실 검증의 규율 부재, 독립적인 취재를 하지 않는 풍토가 복합적으로 얽혀 빚어진 구조적인 오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통신사의 자료를 썼다는 이유로 언론사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도 지적했다. “신문·방송 등에 기사를 공급하는 뉴스통신사의 자료라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쓰는 언론사는 최종적으로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결국 뉴스 이용자들은 원래의 오보가 어디에서 시작됐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뉴스를 접한 매체에서 오보를 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보도를 계기로 한국기자협회 등 5개 단체가 정한
‘재난보도준칙’은 “정확하고 신속하게 재난 정보를 제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도 언론의 기본 사명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취재원에 대한 검증, 유언비어 방지, 단편적 정보를 보도할 때의 유의점 등도 자세히 규정해놨다. ‘정확성’보다 ‘신속성’에 방점을 찍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 문제가 제주 지역 지진 관련 보도로 또 한번 드러난 셈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