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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K콘텐츠 성공 뒤의 씁쓸한 현실

등록 2021-11-16 18:55수정 2021-11-17 02:30

[최선영의 미디어전망대]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최선영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
최선영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

최선영ㅣ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

‘제작행위 방해’ ‘납품 후 재작업 요구’ ‘특정한 결제 방식 요구’ ‘현저히 낮은 대가 책정 행위’ ‘지식재산권 양도 강제’ ‘불공정한 수익 배분’.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계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불공정 행위 유형이다. 지난 9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콘텐츠 산업 10대 불공정 행위 실태조사’ 보고서는 출판, 방송, 영화, 캐릭터, 애니메이션, 만화·웹툰, 음악·공연, 광고, 게임 등 9개 콘텐츠 산업 분야에서 이러한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밝혔다. 특히 기획·제작·유통·배급 관련 기업과 거래하거나 그 기업에 종사하는 개인 창작자의 33.6%가 갑-을-병-정이라는 구태스러운 계약 구조에서 10가지 불공정 행위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된 사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리나라 콘텐츠 창작 생태계의 우울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특히 거래 상대방이 권한을 침해하여 제작 및 경영에 관여하는 행위를 비롯해 무리한 작업시간 단축 요구와 제작 강행, 일방적인 계약 변경과 해지, 끊임없는 수정 보완 요구, 특정 방법으로 대금 수령 강요, 제작비 삭감·지연·미지급, 추가 작업분 미지급 등의 불공정 행위는 9개 산업 전 분야에서 발생하는 구체적 경험이라고 분석했다.

왜 불공정 거래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것일까? 콘텐츠 산업은 소규모 영세 기업이 많고, 프리랜서 창작자의 노동이 중요하게 작동하는 특수성이 있다. 개별 단위 창작 주체들은 유통을 선점하고 있는 플랫폼과 같은 대기업과 거래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고, 소규모 창작 기업끼리는 서로 하도급 개념의 협업을 하는 동시에 경쟁 관계라는 거래 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또 노동의 결과로 창작물을 제공하는 개인 창작자는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거래 대상이 된다. 생산단계마다 생산요소의 거래 관계가 복잡하게 형성되는 특성에 따라 제도적 개선이 쉽지 않다. 콘텐츠 산업 상단에 위치한 플랫폼이나 방송사 등 큰 기업들이 스스로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는 방법이 더 수월하다.

<오징어 게임> 성공을 둘러싼 국내 보도 대부분은 넷플릭스가 1조원이 넘는 큰 수익을 올리고도 창작자에게는 공정한 수익과 대가를 주지 않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의 제작비가 왜 그렇게 책정이 되었는지 국내 거래 관행부터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제작 관행 기준에서 넷플릭스는 3배 이상의 제작비를 책정한 셈이니, 성공하지 않았더라면 매우 후하게 제작비를 지급한 사례가 되었을 것이다.

가장 기이한 관점은 글로벌 오티티(OTT) 사업자들이 창작자들의 임금과 제작비를 인상해서 국내의 투자 여건을 나쁘게 한다는 주장이다. 불공정 행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글로벌 오티티 사업자의 편을 들자는 게 아니다. 우리 콘텐츠의 경쟁력이 누군가의 터무니없는 일방적 희생과 착취 구조라는 불공정 행위에 의한 것이라면 콘텐츠 산업 내에서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개선할 사항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의 저작권을 다 가져간다고 해도 왜 그들과 제작하려는 국내 제작자들이 줄을 설까. 투자 규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거래 관계, 새로운 제작 관행이 무엇인지 살피고, 공정함의 관점에서 콘텐츠 경쟁력을 갖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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