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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별 농사’ 짓는 김창수씨 “별천지 예 있소”

등록 2005-06-21 17:54

 김창수씨의 천문관측돔. 김씨는 취사도구<br>와 돗자리까지 비치한 이곳에서 밤을 별빛으로<br>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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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씨의 천문관측돔. 김씨는 취사도구
와 돗자리까지 비치한 이곳에서 밤을 별빛으로
밝힌다. \
어려서부터 별에 미쳐
날마다 밤이면 별과 살았다
대전데 과천에 군포에
천문관측대도 직접 만들었다
‘별 볼일 많은 세상’ 열어주기 위해

18일 충북 괴산 가는 길. 라디오 뉴스에선 중부지방에 벼락을 동반한 비가 내린단다. ‘별’ 볼 일 없는 밤이란 예고다. 4일 동안 외유를 마치고 이날 귀가하리라던 별지기 김창수(47)씨는 그의 아내와 함께 대천 앞바다 한산섬 해변에 있단다. 지방 축제 등에서 사람들에게 별을 보여주기 위해 봉고차에 망원경을 싣고다니는 그는 바쁠 것이 없다. 차를 몰고 가다 길이 막히면 한적한 도로변에 차를 대놓고는 돗자리를 깔고 누워 망원경으로 별 구경을 한다. 청소년축구를 보겠다고 해변엔 사람그림자도 없던 밤에도 그는 ‘별’ 천지를 관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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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별에 빠지면 좀체 움직이려 들지 않은 그가 서둘러 괴산으로 귀가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별구경을 시켜줄 수 있다는 말에 발 길을 돌린 것이다. 일기예보와 달리 밤하늘도 별맞이를 돕는다.

휘영청 밝은 달은 괴산군 도안면 야산 기슭의 천문관측대 10여개의 돔들을 비춘다. 우주센터같다. 김씨가 직접 만든 관측 돔들이다.

김씨는 어려서부터 별이 좋았다. 그의 부모가 딸 다섯을 낳은 뒤 얻는 귀한 아들은 마치 하늘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별을 그리워하는 아이처럼 봄이면 보리 밭에 눕고, 겨울이면 들판의 볏단 속에 누워 밤마다 별을 보곤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공고를 졸업하고 특전사에서 7년 6개월 동안 군대 생활을 한 그는 야간 행군때도 별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직업을 갖지않고 오직 별에 미치서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이제 제도권에서조차 무시할 수 없는 천문대 기술자가 되었다.

그가 손수 만든 돔관측대에서 버튼을 누르자 돔 천장이 열리기 시작한다. 하늘이 뚫렸다. 100㎜ 망원경으로 본 달은 발에 닿을 듯 말 듯 가깝다. 엄마 아빠와 함께 별을 구경하러 온 다린이(9)와 다빈이(7)도 망원경을 통해 달나라를 보곤 신기해 한다.

“토끼가 몇 마리나 있느냐?”는 김씨의 물음에 렌즈에 시선을 고정한 다빈이는 “일곱 마리”란다. 달빛 망원경 가엔 웃음빛이 쏟아진다.

또 아이들은 줄무늬 반지를 낀 목성을 보며 탄성을 지른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란다. 눈에 보이는 별은 8천개지.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별들이 훨씬 많단다. 하늘 어느 곳에 바늘을 가리켜도 그곳엔 틀림 없이 별들이 있단다. 하늘엔 수천 억 개의 별들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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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안내에 아이들은 이미 별나라 여행을 떠나고 있다.

김씨에게 별이 없었다면. 그는 지금까지 삶을 지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별에 대한 그의 사랑을 누구 하나 이해해 주지 않았다. 그는 ‘별에 미친 놈’일 뿐이었다. 이제 대학 1학년이 된 그의 아이는 뇌종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천문대와 망원경을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별을 보여주기 위해 15년 전 고향집에 세운 공장이 망해 완벽한 빈털터리가 되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였다고 생각했다면 그는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전부라고 믿는 ‘고정관념’과 ‘시야’ 너머에 무한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것을 별들을 보며 알았다.

혼자서 익힌 천문대와 망원경 제작 기술은 일본의 대기업에서도 탐낼 정도가 됐고, 그가 만든 천문대가 대전시민회관, 영동 별마을, 과천정보과학도서관, 군포 대야미도서관 등에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그의 천문대와 공장은 전기세를 못내 전기 공급이 중단되기도 한다. 천문대를 만들어 팔아 돈을 남기는 것보다 어떻게 해서든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별을 보게 하려는 마음 때문에 이해타산을 뒤로 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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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래도 부부싸움을 해 파경에 이른 부부나 진로가 막혀 ‘별 볼 일 없는 세상’을 좌절하는 젊은이들에게 ‘별 볼일이 많은 세상’을 열어준다. 그들이 꿈에서 깨어나듯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새롭게 삶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것을 볼 때 그는 부러울 것 없는 행복감에 젖는다.

“우리 은하계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계인 안드로메다의 빛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270만년이 걸린단다. 다른 별빛들은 지구의 나이 45억년보다 더 오랜 수백억년이 걸리기도 한단다. 태초의 빛이 너를 향해 그토록 오랜 세월 달려온 거란다.”

망막에 태초의 빛이 어린다. 막막한 시야엔 하늘이 열리고, 어둠만이 가득했던 가슴에도 별빛이 빛나기 시작한다. 괴산/글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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