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없이 3천만원 보육원 기부
기부영수증도 “필요없다” 거절
기부영수증도 “필요없다” 거절
화창했지만 기온이 영하 가까이 떨어져 쌀쌀했던 지난 18일 오후, 6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한 남성이 전남 여수시의 여수보육원을 찾았다.
보육원에 들어선 그는 “114 안내에 물어 여수의 보육원원을 찾았다”며 쭈뼛쭈뼛 말을 꺼냈다. 약간 벗겨진 머리에 황토색의 두꺼운 외투를 입은 남성의 옷차림은 깨끗했지만 낡아 보였다. 작은 키에 체격은 왜소했고 손은 끝이 뭉툭하게 닳아 있었다. 보육원의 윤미숙 사무국장은 차를 내왔다.
이 남성은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은 채 묵묵히 차를 마셨다. 이따금 보육원의 아이들은 몇 명인지, 어떻게 지내는지 등을 물을 뿐이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차를 비운 그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라”며 외투 안주머니에서 얇은 봉투를 꺼내 윤 국장에게 맡기고 일어섰다.
윤 국장은 그가 떠난 뒤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3000만원짜리 수표가 한 장 들어 있었다. 함께 있던 보육원 영양사 이수현씨가 깜짝 놀라 “성함이라도 알아야겠다”며 서둘러 보육원 앞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나갔다.
정류장에 서 있던 남성에게 이씨는 “기부 영수증이라도 만들어 드리고 싶다”며 간곡히 이름을 물었지만, 그는 “필요 없다”며 끝내 거절했다. 단지 “(여수) 문수동에 사는 사람”이라며 “곧 광주로 이사 간다”는 말만 남기고 버스에 올랐다.
윤 국장은 21일 이 남성의 사연을 <한겨레>에 전하며 “감사의 말을 드리지 못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윤 국장은 대신 그에게 이런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저희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을 위한다는 마음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 잊지 않고, 맡겨 주신 돈 아이들을 위해 쓰겠습니다.”
보육원은 이 돈을 그동안 형편이 어려워 엄두를 내지 못했던 아이들의 자기개발비 등에 쓸 계획이다. ‘이름 없는 천사’가 건넨 돈은 이곳에 사는 어려운 아이들 60여명이 꾸는 꿈의 밑천이 될 것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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