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살다간 할머니 16년간 돌본 공무원 박종민씨
홀로 살다간 할머니 16년간 돌본 공무원 박종민씨
서울 성동구 도선동사무소에서 서무주임 일을 보고 있는 박종민(44·사진)씨가 김석연(82) 할머니를 처음 만난 건 16년 전인 1991년이다.
“사근동사무소에서 취로사업 담당으로 있을 때였는데 평소 목소리 큰 할머니가 다른 취로 인부들과 마찰이 많았어요. 잘들 지내시라고 설득하려 한양대 맞은편 단칸셋방으로 찾아 뵀지요.”
박씨는 그뒤로 피붙이 하나 없이 홀로 사는 할머니가 눈에 밟혀 일주일이나 한달에 한차례씩 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초밥이나 제과점 빵을 손에 들고 문을 여는 박씨를 볼 때마다 할머니는 “내 아들 왔다”고 좋아했다. 박씨는 부인이 직접 싸준 밑반찬을 나르는 ‘전달책’으로도 활약했다. 나중엔 박씨의 부인과 두 아들도 할머니 집에 함께 갔다. 할머니는 자신이 사준 자장면을 박씨의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했다.
빵보다, 초밥보다 할머니를 기쁘게 한 건 잊지 않고 찾아주는 정이 아니었을까. 보증금 100만원, 월세 10만원짜리 방에 살던 할머니의 자존심도 보통 이상이어서, 박씨가 돌아갈 때마다 돈을 쥐어주려해 종종 ‘분란’이 일기도 했다. 낳은 정도, 기른 정도 없었지만 두 사람 사이 인연의 끈은 오래 갔다. 박씨의 어머니(82)와 할머니가 함께 어린이대공원에 놀러간 적도 있다.
그러던 2년여 전 어느날, 할머니가 구토 증세를 보여 함께 찾은 국립의료원의 의사는 대장암 초기라는 진단을 내렸다. 할머니는 수술을 거부했다. 지난달 초 상태가 나빠진 할머니는 마침내 입원했다. 지난달 10일 새벽 3시께 위독하다는 연락에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박씨는 “이름 부르니까, ‘아들 왔어요’ 하니까 눈을 뜨고 웃으시더군요”라고 말했다. 그날 아침 할머니는 영영 눈을 감았다.
그제야 호적을 떼어보니 할머니에게는 동생이 둘이었다. 그러나 여동생은 이민을 갔고, 남동생의 부인은 “가볼 생각이 없다”고 했다.
“가시고나니 애기 엄마나 저나 계실 때 잘 해드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는 박씨는 “시설에 들어가시라고 많이 싸운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박씨는 할머니가 남긴 유산 400여만원을 형편이 어려운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내놓을 계획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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