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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뚜벅뚜벅…나와 세상을 만나러 갑니다

등록 2007-06-11 21:10

선상규(61) 한국체육진흥회 회장
선상규(61) 한국체육진흥회 회장
선상규 체육진흥회장의 ‘걷기 예찬’

선상규(61) 한국체육진흥회 회장은 우리나라 걷기 운동의 선구자다. 그에게 걷기는 물이나 공기와 같다. 올해로 17년째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선 회장의 하루는 걷기로 시작해서 걷기로 끝난다. 아침에 일어나 1시간 가량 걷고, 서울 신당동 집에서 걸어서 25분쯤 걸리는 광희동 사무실까지 매일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웬만한 약속 장소에는 걸어서 가기 때문에 그는 하루에 3시간 이상을 걷는다.

선 회장은 걷기 보급에도 열심이다. 그는 자신이 이끌고 있는 걷기운동단체인 한국걷기연맹과 한국시민스포츠연맹을 통해 1995년 경주를 시작으로 서울, 원주, 서귀포 등에서 해당 지자체와 함께 30여 차례 각종 걷기 대회를 열었다. 96년에 이어 지난 4월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 우정걷기 대회’도 개최했고, 그 자신도 체육진흥회 회원들과 함께 46일 동안 1200㎞를 걷는 대장정에 참여했다.

선 회장의 걷기는 건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걷다 보면 몸은 물론 마음까지 건강해져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걷기 예찬이다.

19년전 교통사고로 다리절단 위기 넘기며 시작
각종 단체 만들고 대회 치르며 보급 나서
“걷기는 건강운동 넘어 수행이자 환경·평화운동”

선상규 회장이 걷기 운동에 푹 빠진 것은 교통사고를 겪은 뒤였다. 태권도 공인5단이자 체육학을 전공한 그에게 걷기는 운동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고가 그의 사고를 바꿔놓았다. 그는 1988년 직장이던 동국대 정문을 나서다 승용차에 치였다. 큰 사고였다. 그의 몸은 공중을 날아 떨어졌다. 의사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그에게 왼쪽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3년에 걸쳐 3차례 철심까지 박는 대수술을 받았고, 퇴원한 뒤에는 재활치료 대신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제가 겁이 많습니다. 남이 내 다리를 마구 만지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혼자 해보자고 시작한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혼자 서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문경새재 트레킹’에 참여해 목발을 짚고 632m 정상에 오를 정도로 결심은 굳었다. 그때의 자신감으로 그는 걷기 운동만으로 “재활치료가 아닌 자활치료”를 통해 혼자 걷게 됐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네덜란드, 영국, 일본, 중국 등에서 열리는 국제걷기대회에 참여했고 한·일 월드컵 기념 20개 도시 걷기 대회와 원주시, 서귀포시, 서울시와 함께 국제걷기대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선 회장은 걷기를 건강 운동으로만 봐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건강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람들이 점점 에고이스트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걷기는 고행을 통해 성숙한 사고에 도달하는 수단입니다. 고승들은 걷기를 수행의 방편으로 썼습니다. 탑돌이도 비슷합니다. 또 베토벤은 걸으면서 악상을 떠올렸고, 칸트는 걸으면서 사유를 했습니다. 우리도 걸으면서 자신과 세상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걸으면서 바라본 그의 눈에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기만 했다. 모든 사람은 가족과 주위 사람은 물론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고 살지만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조차 잊고 사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자연은 물론 다른 사람조차 이용하려고만 했지 공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게 그의 현대 문명 비판이다.

선 회장은 걷기에서 환경 운동과 평화 운동의 씨앗을 본다. 걷다 보면 자연을 가까이서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자연의 중요성을 자연스레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 사이에도 서로 오가면서 함께 걷다 보면 그 나라 사람과 생각을 나누고 문화를 경험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갈 수 있다고 믿는다.

선상규 체육진흥회장의 ‘걷기 예찬’
선상규 체육진흥회장의 ‘걷기 예찬’
걷기는 그 자신이 겪은 여러가지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도 크게 도움을 줬다. 선 회장은 걷기에 ‘필’이 꽂히기 이전에도 체육을 통해 정신적 성숙을 이뤄 밝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는 생각에 생활체육운동을 펴왔다. 이를 위해 84년 사재를 털어 선체육진흥회를 만들었다. 단체 이름앞에 선(禪)자를 붙인 것도 운동과 정신의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종교적인 선입견을 준다는 지적이 있어 국민생활체육협회로 이름을 바꿨지만 진흥회는 신라의 화랑처럼 청소년들의 심신수련 활동, 노인체육활동, 국민체력평가대회 등 생활체육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93년부터 13년 동안 연변의 조선족 체육대회를 지원했고, 동국대 학생들과 여름방학이면 심양 보하이(발해)대학을 찾아 봉사 활동을 펴기도 했다. 2003년부터 연변자치구에서 걷기대회도 열고 있다.

성과는 많았지만 진흥회 운영은 늘 힘들었다. 80년대 말 정부 기관으로부터 단체 이름을 내놓으라는 ‘요청’을 받고 국민생활체육협회는 한국체육진흥회로 이름을 바꿨고 그가 만든 단체 이름은 전경환씨의 국민생활체육협의회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협의회가 생겼지만 진흥회는 트레킹, 풋살, 스포츠 댄스 등을 처음 소개하는 등 생활체육의 다양성과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아이엠에프 때 벌어졌다. 처음 출범 때 200명으로 시작해 3천명까지 는 회원은 아이엠에프를 계기로 대부분 떨어져 나갔다. 재정적인 어려움은 선 회장과 이사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간신히 버텼다. 그 자신은 “월급 봉투를 집에 가져다준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번 돈을 대부분 단체 일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1년 1월에는 위탁운영하던 보라매공원의 체육관이 폭설로 무너져 큰 피해를 보기도 했다.

체육 행사 개최에도 어려움이 닥쳐왔다. 지난해에는 정부의 지원사업이 공모제로 바뀌면서 18년 동안 계속해 온 노인생활체육대회를 중단했다. 연변에서 열던 걷기 대회도 올해 중국 정부에서 국가 행사로 흡수해 버리는 바람에 계속할 수 없게 됐다. 진흥회에서 싹을 틔운 아이템을 가져다 상업적으로 써먹는 이들도 있었다. 속이 상했지만 그럴 때마다 걸으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걷다 보면 미움도 서운함도 조금씩 사라졌다.

“속상한 일도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마음에 담아뒀으면 병이 났을 거예요. 그렇게 밖으로만 돌아다니는 남편을 이해해준 아내가 너무 고맙지요.”

글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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