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씨의
암·쪽·사람 이야기 김광수씨에게선 죽을 고비를 넘긴 이의 달관이랄까, 수행자의 깨달음이랄까, 뭐 그런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가닥 미련이 남아 있다. 쪽빛 하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아 쪽염의 맥을 잇도록 하는 것이다. 암 이야기
그가 의사로부터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도 덤덤했다. 가족과 인쇄소 직원들이 먹고 살 수 있게 만들어놓고 떠나야한다는 생각은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더니 넉달째가 되자 침대에 올라갈 힘도 없었다. “하루는 제가 존경하는 큰스님이 오셔서 80살을 타고 났는데 50에 죽으면 억울한 일이요, 50살을 타고 났는데 80까지 살려고 하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시대요. 부아가 치밀더라구요. 아니 먼길 오셔서 니 명은 80을 타고 났으니 걱정말라고 하면 얼마나 좋았겠십니까.” 사람의 명이란 모르는 일이니 마음을 비우라는 뜻임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 뒤 방사선 치료를 그만두고 산으로 들어갔다. 함께 치료받던 이들 60명에게 전화를 했더니 1명 빼고 다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암도 내 몸 안의 세포 아닙니까. 우리 몸에 60조 개의 세포가 있다고 하는데 미친 놈이 생긴 것이니 자기들끼리 타협해서 살길을 찾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6개월쯤 지냈을까, 어느날 병이 오다가 방향을 바꿨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자신이 병자라는 생각조차 버렸다고 한다. 쪽 이야기
그의 쪽이야기는 끝이 없다. 쪽염은 인류가 맨 처음 사용한 식물연료. 조상들은 자녀들이 성인이 될 때 쪽으로 염색한 옷감을 선물로 줬다. 쪽염 옷감은 해충에 강해 옷장에 넣어두면 좀벌레가 생기지 않았고, 특히 피부병에 좋다고 했다. 쪽물을 연구하면서 여러 가지 특성을 알게 됐다. 대표적인 것이 원액이 산화를 막기 위해 스스로 막을 형성한다는 사실. 어떤 사람은 그를 찾아와 발효조로 고무통을 쓰는 것을 보고 천연염색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고무를 쓰냐고 핀잔을 줬다. “독은 숨을 쉬기 때문에 쪽이 산화해버립니다. 그래서 조상들은 쪽방을 만들고 그곳에 단지를 묻었습니다. 산화를 막고 열을 가해 발효시키기 위해서지요.” 하늘빛과 물빛을 닮아 천년 이상 색이 바래지 않는다는 쪽염색. 그는 자신만의 염색법을 개발했다. 큰 스님이 그에게 준 이름을 떠서 고담법이라 이름지었다고. 그는 쪽 또한 불성이 담긴 소중한 생명체로 여긴다. “쪽에서 색은 아주 작은 부분이고 나머지는 생명체입니다. 대학 강의를 하는 제자가 수강생 16명을 데리고 와서 무작시럽게 천을 담그자 아예 색이 묻어나지를 않았어요. 생명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다뤄야 해요.” 사람 이야기
암을 고쳤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들 비법을 물었다. 사실대로 얘기해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실망스런 얼굴로 돌아서는 그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쪽물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도 비슷하다. 갖고 가면 미생물이 죽어 썩은 물처럼 된다고 이곳에서 염색을 하라고 하면 아까워서 안주는 것으로 알고 서운해한다고 했다. 쪽염 전시회를 몇차례 하자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쪽물 염색법을 알기 위해서다. 가르쳐주지 않으면 마구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저 무심히 받아넘길 뿐. 그는 사람을 까다롭게 본다. 맘비우고 산에 사니 암 사라져· 쪽은 살아있는 생명체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색 없어· 맥 이을만큼만 성공했으면 김씨도 돈벌이에 조금은 관심이 있다. 연구소를 유지할 정도의 사회적 성공은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인연을 맺은 것이 부산 희망터 자활후견기관의 여성 가장들이 만든 자활공동체다. 어려운 처지의 여성들이 자신이 물들인 천으로 자립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가난하지만 정직한 여성들을 통해 쪽염이 알려 지리라 기대한다. “지금은 성공하지 않으면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는 세태거든요. 그렇게 되면 쪽물 염색법도 사라질 겁니다.” 글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암·쪽·사람 이야기 김광수씨에게선 죽을 고비를 넘긴 이의 달관이랄까, 수행자의 깨달음이랄까, 뭐 그런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가닥 미련이 남아 있다. 쪽빛 하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아 쪽염의 맥을 잇도록 하는 것이다. 암 이야기
그가 의사로부터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도 덤덤했다. 가족과 인쇄소 직원들이 먹고 살 수 있게 만들어놓고 떠나야한다는 생각은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더니 넉달째가 되자 침대에 올라갈 힘도 없었다. “하루는 제가 존경하는 큰스님이 오셔서 80살을 타고 났는데 50에 죽으면 억울한 일이요, 50살을 타고 났는데 80까지 살려고 하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시대요. 부아가 치밀더라구요. 아니 먼길 오셔서 니 명은 80을 타고 났으니 걱정말라고 하면 얼마나 좋았겠십니까.” 사람의 명이란 모르는 일이니 마음을 비우라는 뜻임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 뒤 방사선 치료를 그만두고 산으로 들어갔다. 함께 치료받던 이들 60명에게 전화를 했더니 1명 빼고 다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암도 내 몸 안의 세포 아닙니까. 우리 몸에 60조 개의 세포가 있다고 하는데 미친 놈이 생긴 것이니 자기들끼리 타협해서 살길을 찾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6개월쯤 지냈을까, 어느날 병이 오다가 방향을 바꿨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자신이 병자라는 생각조차 버렸다고 한다. 쪽 이야기
그의 쪽이야기는 끝이 없다. 쪽염은 인류가 맨 처음 사용한 식물연료. 조상들은 자녀들이 성인이 될 때 쪽으로 염색한 옷감을 선물로 줬다. 쪽염 옷감은 해충에 강해 옷장에 넣어두면 좀벌레가 생기지 않았고, 특히 피부병에 좋다고 했다. 쪽물을 연구하면서 여러 가지 특성을 알게 됐다. 대표적인 것이 원액이 산화를 막기 위해 스스로 막을 형성한다는 사실. 어떤 사람은 그를 찾아와 발효조로 고무통을 쓰는 것을 보고 천연염색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고무를 쓰냐고 핀잔을 줬다. “독은 숨을 쉬기 때문에 쪽이 산화해버립니다. 그래서 조상들은 쪽방을 만들고 그곳에 단지를 묻었습니다. 산화를 막고 열을 가해 발효시키기 위해서지요.” 하늘빛과 물빛을 닮아 천년 이상 색이 바래지 않는다는 쪽염색. 그는 자신만의 염색법을 개발했다. 큰 스님이 그에게 준 이름을 떠서 고담법이라 이름지었다고. 그는 쪽 또한 불성이 담긴 소중한 생명체로 여긴다. “쪽에서 색은 아주 작은 부분이고 나머지는 생명체입니다. 대학 강의를 하는 제자가 수강생 16명을 데리고 와서 무작시럽게 천을 담그자 아예 색이 묻어나지를 않았어요. 생명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다뤄야 해요.” 사람 이야기
암을 고쳤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들 비법을 물었다. 사실대로 얘기해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실망스런 얼굴로 돌아서는 그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쪽물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도 비슷하다. 갖고 가면 미생물이 죽어 썩은 물처럼 된다고 이곳에서 염색을 하라고 하면 아까워서 안주는 것으로 알고 서운해한다고 했다. 쪽염 전시회를 몇차례 하자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쪽물 염색법을 알기 위해서다. 가르쳐주지 않으면 마구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저 무심히 받아넘길 뿐. 그는 사람을 까다롭게 본다. 맘비우고 산에 사니 암 사라져· 쪽은 살아있는 생명체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색 없어· 맥 이을만큼만 성공했으면 김씨도 돈벌이에 조금은 관심이 있다. 연구소를 유지할 정도의 사회적 성공은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인연을 맺은 것이 부산 희망터 자활후견기관의 여성 가장들이 만든 자활공동체다. 어려운 처지의 여성들이 자신이 물들인 천으로 자립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가난하지만 정직한 여성들을 통해 쪽염이 알려 지리라 기대한다. “지금은 성공하지 않으면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는 세태거든요. 그렇게 되면 쪽물 염색법도 사라질 겁니다.” 글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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