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동조합이 10일 오전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앞에서 지난 8일 발생한 현대제철 당진공장 노동자 사망사고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현대중공업과 현대제철 등에서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가운데, 이런 산재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정부가 이르면 이달 말 확정해 입법예고할 것으로 보이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령에 경영책임자 처벌 범위 등을 포괄적으로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는 이달 말 또는 내달 초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확정해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지난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은 경영책임자 등에게 안전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부과하고 위반하면 이들을 처벌하자는 내용이 핵심이다.
중대재해법 적용의 필요성은 최근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 사례가 방증한다. 안전보건대책 미비로 비슷한 형태의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일 하청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현대중공업은 2016년 5명, 2017년 2명, 2018년 3명, 2019년 3명, 2020년 4명에 이어, 올해도 2명의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했다. 현대중공업은 노동부가 지난해부터 지난 2월까지 이 회사를 집중적으로 감독했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같은 날 현대제철 충남 당진제철소에서도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금속노조 집계를 보면, 현대제철에서는 2007년부터 지난 8일까지 모두 39명이 작업 중 숨졌다. 노동부의 집계를 보면, 현대제철은 하청노동자 사고사망 비중이 높은 원청사업장 명단에 2018년과 2019년 2년 연속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사업장을 규제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중대재해법이 시행령에 일부 위임하고 있는 ‘경영책임자의 의무와 이행 사항’ 등을 포괄적으로 적용해야 중대재해법 취지가 훼손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시행령에서 사실상 적용 범위를 축소하자고 맞선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크게 세 가지 쟁점에서 대립하고 있다. 먼저 ‘인력과 예산’ 관련 규정에 대한 해석이다. 중대재해법은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하도록 경영자·사업주에게 의무를 부과한다. 노동계는 ‘인력’ 조항을 두고 노동자가 위험작업에 대해서 2인1조로 근무하게끔 하고, 충분한 인력을 두어 시간에 쫓기다가 산재를 겪지 않도록 사업주가 예산 투입 등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견해다. 하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경제6단체가 지난달 13일 공동으로 제출한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건의서를 보면, 경영계는 ‘인력’을 ‘전문인력’으로 해석해 안전보건 책임자를 채용하는 의무만 지면 된다고 본다.
지난 8일 발생한 현대제철 충남 당진제철소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도 양쪽의 견해에 따라 갈릴 수 있다. 가열로 설비를 점검하다 숨진 김아무개(44)씨는 ‘홀로’ 현장에 나갔다가 기계에 끼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계의 견해대로라면, 위험 현장에서 2인1조를 이룰 수 있도록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지 않은 회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경영계의 견해대로라면 그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이현정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산재사고가 안전보건 담당자 채용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며 “과로사 등 노동시간의 문제도 결국 인력 문제”라고 지적했다.
누가 중대재해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는지를 두고도 경영계와 노동계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경영계는 충분한 권한과 책임을 가진 안전보건 책임자를 두면 대표이사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규정을 시행령에 넣자고 주장한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제철의 산재에서도 안전보건 책임자가 있다면 회사 대표가 책임을 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노동계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경영계의 주장이 무리수라고 지적한다. 최정학 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법률에서 위임하지도 않은 부분을 시행령에 담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은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따라 개선·시정 등 조처를 해야 할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했는데, 이 법령의 범위 역시 쟁점이다. 경영계는 ‘안전·보건 관계법령’을 산업안전보건법으로 한정하자고 한다. 반면 노동계는 근로기준법 등으로 넓혀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현정 국장은 “장시간 노동이나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산업재해를 포괄할 수 있게 근로기준법 등으로 확장해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경영계는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관련 계획을 확인하고, 이행 여부를 연 1회 이상 보고받으면 이행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보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계는 실질적으로 점검과 개선을 하고, 이를 노동자들에게 알리는 데까지 경영책임자가 의무를 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 교수는 경영계 쪽의 주장에 대해 “개별 사업장에 해당하는 안전의무가 무엇인지 미리부터 법을 써놓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이 법은 일반적으로 포괄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며 “최근 벌어진 사고들을 봐도 안전의무는 미리 규정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짚었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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