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인 안경덕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이 삼성그룹과 이마트가 노조 와해 작전과 노조 활동 봉쇄에 열을 올리던 2011~2012년 내부적으로 작성한 ‘명절 선물 대상자’ 리스트에 올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안 후보자는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한겨레>가 장하나 전 의원이 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당시에 입수한 이마트 기업문화팀의 2012년 ‘설 명절 선물 배송 예산’ 명단을 21일 확인해보니, 당시 인천 등을 관할하는 중부지방고용노동청장이었던 안 후보자는 이마트가 2011년에 명절 선물을 발송한 것으로 기재한 명단에 올라 있다. 이 명단은 2012년 1월 작성됐으며, 국회의원과 경찰, 노동부 공무원 등 36명이 포함돼 있다. 이마트는 안 후보자의 이름과 연락처, 자택 주소를 적고 2011년 설 선물로 9만8천원 상당의 한우 세트를, 추석 선물로 10만8천원 상당의 ‘명품 상주왕곶감’을 기재했다.
안 후보자는 2010년 4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비서실 고용노사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일하다 고용노동부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겨 6개월 근무했고, 2011년 7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중부고용노동청장으로 재직했다.
문제의 이마트 명단은 2011년 노동부 공무원 등에게 보낸 선물의 가격대를 토대로 2012년 설 명절 선물 예산을 새로 짜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기업문화팀이 인사팀에 선물 배송 대상자 명단을 이메일에 첨부해 보낸 건 2012년 1월17일 설 명절을 닷새 앞둔 시점이다. 이메일을 작성한 김아무개 대리는 “시즌이 다가온 만큼 첨부(파일) 확인하시어 작년(2011년) 추석에 다녀오셨던 데 다시 함(한 번) 방문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이들에 대한 선물 배송이 일회성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마트는 기업문화팀 소속 대리와 과장을 나눠 36명에게 각각 선물을 전달할 ‘배송자’로 지정했다. 안 후보자의 이름 옆에도 이마트 기업문화팀 대리가 배송자로 적혀 있었다.
2011~2012년 이마트는 회사 내 복수노조 설립을 앞두고 노조 활동을 봉쇄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마트가 이 시기 노동부 공무원과 경찰 등에 선물을 보낸 것도 이런 사실과 무관치 않다. 2011년 3월 이마트가 작성한 ‘복수NJ(노조) 관련 당부사항’이라는 문건을 보면, “노동부를 비롯한 관계 기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대관 비용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집중 점검할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이마트 동인천점을 관할했는데, 이곳은 이마트 노조 설립을 주도한 전수찬 이마트 초대 노조위원장이 소속된 직장이었다. 이마트는 노조 설립 사흘 전 전 위원장을 광주로 발령냈고 끝내 해고했다.
지난 2012년 이마트 기업문화팀이 작성한 ‘설 명절 선물’ 리스트. 전년도인 2011년 선물 배송 목록이 참고로 적혀 있다. 장하나 전 의원실 자료 갈무리
안 후보자는
2012년 1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따로 관리한 88명의 명절 선물 발송 대상자에도 포함됐다. 삼성그룹이 당시 작성한 ‘명절 선물 배송자’ 명단을 보면, 목장균 전 삼성전자 전무는 안 후보자에게 22만원 상당의 한우세트를 전달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2011년 삼성그룹도 복수노조 설립을 앞두고 노조 와해 작전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었다. 삼성그룹은 이와 관련해 노동부 내부 인사와 꾸준히 접촉했고 2012년엔 안 후보자를 포함한 노동부 공무원 등에게 명절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
2011년∼2012년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제정되기 전인 데다, 선물 대가성도 명확하지 않아서 안 후보자가 선물을 받았다고 해도 불법일 가능성은 작다. 다만 ‘무노조 경영’을 고수한 두 기업이 당시 복수노조 설립을 앞두고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었다는 점에서 명절 선물을 받았을 경우 도의적인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날 안 후보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배송 자체를 받지 않았고 누가 찾아온 기억도 없다”며 “당시 국민권익위원회 조사를 받았을 때도 (선물을) 받은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서울에 본사를 둔 이마트가 인천 관할인 중부지방고용노동청장에게 선물을 보낸 경위에 대해서는 “전에 아는 사람이 어딘가에서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던 것 같고 어떤 사람한테 명함을 줘서 (본인 연락처가) 전달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삼성그룹이 보냈다는 한우세트에 대해선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지난 2013년 권익위와 함께 명절 선물 배송 대상자를 공동 조사한 것과 관련해, “안 후보자가 선물을 수수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고 권익위에서도 어떠한 조처 결과를 통보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인의 선물 수수 여부를, 관련 사건이 2년이 지난 시점에 노동부와 권익위가 조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피신고자에 대한 자료요구권 등이 없는 권익위의 조사는 한계가 뚜렷하다. 현행법상 권익위는 부정부패에 대한 공익 신고가 들어와도 신고자만 조사할 수 있고 피신고자는 조사할 수 없다. 또 신고 내용과 관련해 외부 기업에 관련 자료를 요구할 권한도 없다.
청탁금지법 해석 자문단으로 활동한 김래영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이제까지 권익위의 조사 현황을 보면 민간 기업 임원을 강제로 불러다 조사할 권한이 없어 공무원만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졌고 실제 선물 발송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우체국이나 택배사 자료 등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선물 수수 여부를 확인하는 데 한계가 뚜렷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다은 최하얀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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