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화재 본사 앞에서 열린 삼성화재 규탄 기자회견에서 김만재 한국노총 금속노련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2일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한 평사원협의회(평협)가 회사 쪽의 지원을 받는 어용 노조이며, 이를 이용해 원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삼성화재 평사원협의회(평협)가 노조설립 인가를 받은 합법노조가 된다. 삼성그룹에서 회사 노사협의회가 노조로 전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협을 비롯한 노사협의회는 삼성그룹이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는 과정에서 노조를 대신했는데, 과거 회사 지원을 받는 ‘친사조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기존 노조가 지난해 설립된 상황에서 뒤이어 평협이 노조로 전환한 데 대해, 노동계 일각에서는 “정당한 노조활동을 방해하는 시도”라는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2일 노동계 설명을 종합하면, 고용노동부는 전날인 지난 1일 평협노조의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교부했다. 노조설립 신고필증이 교부된 노조는 단체교섭을 포함해 노조법상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다. 평협은 지난해 12월 노조전환을 공약으로 내건 홍광흠 회장이 당선되면서, 노조전환을 추진했다. 지난달 22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평협은 회사 구성원들이 1987년 설립해 34년간 운영됐는데, 삼성화재에 입사하면 자동가입 되는 구조였다. 평협의 설명을 보면, 지난달 설문조사에서 평협 구성원 5800여명 중 3076명이 노조전환에 동의했고, 현재 이 가운데 1900여명이 평협노조에 가입한 상태다.
이와 별도로 삼성화재엔 지난해 2월 설립된 ‘삼성화재노조’가 이미 존재한다. 이 노조는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산하다. 이들은 평협 노조 출범에 대해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 노조 쪽은 “평협이 지난 34년간 회사 쪽의 수많은 만행을 묵인하고 방조했던 게 우리 노조 설립의 직접적인 계기였다”고 강조했다. 오상훈 삼성화재노조 위원장은 “평협은 그동안 회사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으면서 회사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을 관리‧통제하는 데 힘썼던 또 하나의 회사 인사팀이었다”고 주장했다.
과거 공개된 삼성그룹 내부문건을 보면, 삼성은 평협과 회사 쪽이 꾸린 노사협의회를 노조와해 수단으로 활용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2012년 ‘에스(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보면 “노사협의회가 대표성이 있어야 노조설립을 저지할 수 있는 명분과 논리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고, 노조 설립시 대항마로 활용”한다고 적혀있다. 또 “유사시 친사 노조로 전환할 수 있도록 마인드 및 역량 제고”라는 계획도 문건에 담겼다.
이 때문에 삼성화재노조는 평협의 노조설립인가를 내준 노동부에 대해서도 “회사의 지원을 받으며 그 지배 아래 놓여 있던 단체와 그 단체 회장이 위원장인 노조설립 신청에 대한 조사를 단 며칠 만에 마무리하고 신고증을 교부했다”고 불만을 표현했다.
하지만 평협노조는 회사 쪽 지원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홍광흠 평협노조 회장(위원장)은 “회사로부터 어떠한 지원을 받은 적이 없고, 오히려 노조 전환과정에서 인사불이익 등 탄압을 받고 있다”며 “에스그룹 전략문건에 등장하는 노사협의회와 삼성화재 평협은 성격이 다르다. 우리 회사 평협은 다른 계열사 평협과 달리 실체가 있었고, 제 기능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평협노조는 조합원들의 뜻에 따라 현재는 상급단체에 가입할 계획이 없다. 독자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는 평협노조 설립을 인가한 데 대해 “평협노조가 헌법상 단결권을 보장하지 않아야 할 정도로 결격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삼성화재 노조와 평협노조는 교섭 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교섭대표 노조의 지위를 갖기 위해 조합원 수 늘리기에 온 힘을 다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회사 내 노조 가입자 수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평협노조는 “1900명”, 삼성화재 노조는 “1000명 이상”이라고 조합원 수를 밝혔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화재 전체 직원은 5690명이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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