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삼성전자노조가 전문가에 의뢰해 조사한 ‘2021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안전보건진단결과 종합보고서’를 지난 10일 회사 쪽에 전달하고 있다. 전국삼성전자노조 제공.
지난해 산업재해 축소·은폐 의혹이 제기된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에서 노동자 10명 가운데 4명꼴로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공상 처리나 개인 치료로 이를 대체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한겨레>가 입수한 ‘2021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광주사업장 안전보건진단결과 종합보고서’를 보면, 설문에 응한 삼성전자 광주공장 노동자 212명 가운데 38.7%(82명)가 업무상 부상 혹은 질병으로 4일 이상 요양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산재 신청을 하지 않고 공상 처리나 개인 치료로 이를 대체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공상 처리는 업무 중 부상을 이유로 사업주로부터 일정한 보상금을 받고 사건을 종결하는 것을 일컫는다. 사업장은 노동자가 업무상 재해를 당해 4일 이상 요양 치료가 필요하면 산재 신청을 해야 한다.
산재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는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해서다. 설문조사에서 ‘회사가 산재 신청을 해도 인사상 불이익이나 상사의 눈치를 받지 않을 정도의 건강한 조직문화가 형성돼 있다고 생각한다’는 질문에 84.9%(180명)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업무상 부상이나 질병이 발생하면 산재 신청을 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79.2%(168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번 보고서는 한국노총 산하 전국삼성전자노조가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지난해 10월부터 2600여명의 노동자를 상대로 심층면담과 설문조사 등을 한 결과다. 앞서 지난해 7월 <한겨레>는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지만 회사 쪽이 고의로 산재 신청을 가로막았다는 노동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고 보도했고(
삼성전자에서 산재 신청은 하늘의 별따기?), 그 뒤 국정감사와 고용노동부 현장조사에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바 있다.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노동자들은 10년 이상 롤러컨베이어에서 무거운 세탁기나 냉장고, 에어컨 등을 반복해서 조립하는 경우가 많아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돼 있지만, 회사는 이를 정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내용을 보면, 이 사업장은 근골격계질환 28건에 대해 산재 발생 보고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12월 시정명령과 과태료 2억8000만원을 부과받았다. 2011~2019년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 신청을 한 경우는 6건, 2019년 노조가 설립된 뒤로도 여태 4건에 그친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40.6%가 근골격계 질병으로 ‘4일 이상 병원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노동자 10여명을 상대로 한 심층면담에서는 이 사업장의 산재 은폐 행위가 관리자를 중심으로 오랜 기간 지속되어 조직문화로까지 정착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ㄱ씨는 “작업대 차량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해 산재 신청을 하려고 했지만, 관리자는 개인 재해로 처리하라고 회유하고 압박했다”고 했다. ㄴ씨는 사업장 외부 정형외과에서 어깨 수술을 두 번 받아 6개월 이상 요양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는데도 “사업장 내 의료진이 ‘(치료 가능한) 병가 기간이 4주’라고 해서 이 기간만 병원 치료를 받았다. 결국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작업에 투입됐다”고 했다.
안전보건진단을 의뢰받은 기관에서 진단한 결과를 보면,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의 안전보건체계 관련 점수는 100점 만점에 37점이었다. 진단에 참여한 한창현 노무사(노무법인 ‘사람과 산재’)는 “그동안 해온 안전보건 활동이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이원일 전국삼성전자노조 광주공장지부장은 “회사는 진단 결과를 참고해 노조가 참여하는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쪽은 “법규에 따라 직장 내 안전보건 교육을 하고 있다. 부상·질병이 발생하는 경우 산재 신청 절차도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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