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산재 유가족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2400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대 교수 등 법학 전문가들이 “법안의 취지와 의미를 퇴색시킨 정부안을 중심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논의해선 안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경영계 등 일각에서 제기하는 문제점을 빌미로 법안의 핵심 조항들이 삭제될 상황에 이르자, 전문가들이 법리적인 검토에 나선 것이다.
29일 오후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대표로 한 법학계 인사 92명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안의 법적 쟁점에 관한 법학계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3명의 법학자가 공동작성한 의견서에 다른 법학자·변호사들이 동의를 밝히는 형식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현재 국회 법사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중대재해법의 쟁점과 정부 부처간 협의안(정부안)으로 제시한 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법안이 다루고 있는 모든 의무와 내용과 책임의 범위를 축소하고 완화하고 있다”고 의견서 제출 취지를 밝혔다. 또 “정부안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 된다면,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 불렸던 지난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논의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선 24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과잉입법’이라며 국회에 중대재해법 제정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출했고, 그 뒤 정부는 부처간 협의를 거친 내용이라며 기업의 요구를 반영한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중대재해 발생에 대한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추정(‘인과관계 추정’)하는 문구를 없애고, 사업장 규모에 따라 법 적용 시점에 유예를 두는 내용을 삽입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국회 법사위는 이날 열린 법안소위에서 정부안을 심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먼저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4년, 50~100인 규모 사업장에는 2년 동안 법 적용을 유예하는 내용이 정부안에 들어간 데 대해,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은 범죄에 대한 처벌에 관한 것이므로 유예기간 없이 모든 사업주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5년부터 2020년 3월까지 전체 사업재해의 79.4%, 전체 사고사망자의 60.1%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는 것도 근거로 들었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다중이용업소에는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중이용업소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서 정하고 있는 안전관리의무를 충실히 하면 된다”고 반박했다. 중대재해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별도의 의무가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소방시설, 비상구, 피난통로 등 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시설 기준을 잘 갖추면 된다는 것이다.
“사고 이전 5년간 안전조치의무 관련 법을 위반한 사실이 3회 이상 확인되거나, 증거를 인멸하거나 현장을 훼손하는 등 진상조사나 수사를 방해한 사실이 확인된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중대재해법의 핵심으로 꼽히지만, 정부안에서 삭제됐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업의 안전범죄 등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전범죄에서는 기업이 여러 정보를 독점하고 있고, 결과를 초래한 직접적인 행위보다 그 구조적인 배경을 제공한 행위가 더 큰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환경범죄 관련 법률에서 ‘상당한 개연성’을 전제로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두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는 의견과 이에 대한 법리적인 해석을 조목조목 밝혔다. 제3자에게 임대, 용역, 도급, 위탁 등을 한 경우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묻는 것은 ‘책임주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연쇄적 계약관계의 최종적인 이익의 귀속자와 포괄적인 사업지배자는 원청사라는 점에서, 권한을 갖는 자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책임주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막대한 경제적 권력을 바탕으로 커다란 피해를 초래하고 있는 기업범죄에 대한 현실적인 통제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전통적인 형사법리를 다소 수정해서라도 법률의 실효적 적용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한국산업노동학회 운영위원회도 국회 법사위에 “중대재해법 가운데 임대, 용역, 도급, 위탁 등을 행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대상으로 위험방지의무를 부과한 것은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조항”이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이들은 “임대, 용역, 도급, 위탁 등의 영역의 노동자들은 ‘위험의 외주화’에 의해 재해 발생률이 더 높고, 영세사업주들은 재량권이 거의 없어 원청의 지시를 따른다는 점, 현실에서 임대, 용역, 도급, 위탁 등의 영역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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