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어 노동법 개악안 철회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전태일 3법’ 국회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정부의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이달 중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심의될 예정인 가운데, 양대노총은 해당 법안의 본회의 상정 땐 총력투쟁에 나서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9일 개정안을 둘러싼 쟁점과 오해를 설명한다며 이례적으로 ‘팩트체크’ 자료까지 작성했지만, 양대노총은 ‘노동기본권을 외려 후퇴시키는 내용이 담겼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이행하고 노동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핵심협약 비준을 임기 내 마치도록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아 보인다.
■ 정부가 노조법 개정에 나서는 이유?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은 187개 회원국 가운데 146개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가운데 32개국이 비준한 국제적인 노동기본권 보장 규범이다. 1996년 오이시디에 가입한 한국은 국제기구로부터 여러 차례 핵심협약 비준을 권고받고 이행 약속까지 했지만, 20여년째 지키지 않고 있다. 또 2011년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이후 유럽연합(EU)은 우리 정부에 핵심협약 비준에 나설 것을 요구해왔고, 지난해 12월 분쟁 해결 절차(전문가 패널 활동)를 개시해 진행 중인 상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아직 비준하지 않은 4개 협약 가운데 우리나라 형벌체계와 분단국가 상황 등을 고려해 빠진 105호 협약(정치적 견해 표명 등에 대한 강제노동 제재)을 제외한 △29호 모든 강제노동 금지 △87호 결사의 자유 보호 △98호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 등 3개 협약의 비준을 추진 중이다. 핵심협약이 비준될 경우 국내 노동관계법과 상충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조법 개정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쪽 설명이다.
노동부는 이번 법 개정을 통해 국제노동기구 권고와 관련해 가장 큰 문제가 됐던 해고자·실직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이 허용된다고 강조한다. 앞서 노동부는 2013년 10월 전교조에 해직자 9명이 있다는 이유로 ‘법률상 노조 아님’ 통보를 했다. 이번 개정안에선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조법 제2조 제4호 라목의 단서조항을 삭제했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2004년 대법원 판례로 산별노조 가입만 허용됐던 해고자·실직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 제한 규정이 사라지는 셈이다.
■ 노동계 반대 핵심 쟁점은?
하지만 노동계는 정부가 ‘경영계 달래기’ 차원에서 여러 독소 조항을 포함시켰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우선, 노동계는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노조법 제2조 제4호 라목의 본문이 남아 있는 한 노조 설립을 신고한 사람이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자격을 정부가 심사하는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는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한 지 1년이 넘어서야 ‘합법노조’로 인정받은 대리운전기사와 방과후학교 강사 노조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조 할 권리’와도 연결된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정부의 법 조항 해석에 따라 특수고용직의 노조 설립 신고필증 교부가 좌우되는 것 자체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재량으로 노동기본권을 제한할 수 없도록 하는 방향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업장 점거 제한’ 조항은 더 큰 비판을 사고 있다. 정부 개정안은 노조의 쟁의행위 시 생산 등 주요업무시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명문화했다. 현행법은 점거의 범위를 구체화하지 않아 사업장의 ‘일부 점거’는 허용하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개정안은 이런 부분적인 직장 점거마저 금지하는 취지로 해석될 여지가 생긴 것이다. 박은정 인제대 교수(공공인재학부)는 “개정안은 사실상 (점거 형태의)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인데, 이는 기존보다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축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핵심협약 비준을 먼저 하고, 유예기간 1년 동안 새 개정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정부는 내년 대선 국면을 고려할 때, 현 정부 임기 안에 핵심협약 비준을 마무리 지으려면 사실상 올해를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 ‘노동존중’을 표방했으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주 52시간제 도입 취지를 훼손한 특별연장근로 허용 등으로 노동계의 반발을 사온 정부와 여당으로선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노동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노조법 개정안을 들고나온 상황이어서, 국회 처리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노조법 개정은 핵심협약 비준 목적에 맞게 그동안 우리 사회가 미뤄왔던 노동기본권 신장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는데, 사회적 대화를 거치며 경영계의 우려가 상당 부분 반영되면서 본래의 취지에서 멀어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선담은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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