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과 배달노동자들이 13일 오후 마포구 도화동 서울서부고용노동지청을 찾아 전국 단위의 라이더유니온 설립신고필증 교부를 촉구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배달 로봇이 출현하더라도 기술이 하지 못하는 부분을 맡는 현장 노동자 집단이 계속 있을 겁니다. 산업이 재편되더라도 꾸준히 수요가 있을 배달 일자리를 안정화시키려면 합리적인 법과 제도 아래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온당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라이더유니온 사무실에서 만난 구교현(43) 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은 배달원(라이더)이 한명의 직업인으로 존중받고 일하는 것을 꿈꾼다. 그는 “40~50대가 되면 퇴직이나 폐업처럼 경제적 위기를 겪기 쉬운데, 전통 제조업에는 새 일자리가 더 이상 없다”며 “플랫폼 노동에 그나마 일자리가 있는데, 이를 부차적인 일자리로 봐선 안 된다.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직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대 때부터 택배 기사, 동대문시장 화물배달,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배달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며 사회운동을 해왔고, 지난해부터 자전거로 주말에 음식배달을 하고 있다. 그는 “옛날엔 배달이 정규직 일자리에 진입하기 전 거치는 아르바이트로 인식됐지만 최근 라이더들은 전업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성수기, 비수기 없는 꾸준한 수요
구 팀장은 “올 4~5월은 성수기 수준으로 배달 수요가 유지됐다”고 말했다. 원래 4~5월은 외출이 많은 계절이라 배달음식 주문의
비수기이지만, 올해는 전염병, 장마, 폭염까지 겹치며 성수기와 비수기 구분 없이 꾸준히 수요가 많았다. 하지만 ‘배달 노동 가치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구 팀장은 강조했다.
“아직도 라이더유니온에 대한 기사의 온라인 댓글을 보면 ‘배달이나 하는 것들이…’ 이런 식의 반응이 많죠. 배달 일에 대한 가치 평가에 사람들은 여전히 인색하고 배달 노동자를 평가절하합니다. 여기에 우리는 계속 도전할 겁니다. 계속 싸워나가고 제도를 바꿔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생각은 점점 변할 거예요.”
개별 음식점에 직접 고용된 소수를 제외하고 현재 대다수 배달원들은 4대 보험, 퇴직금, 연차휴가 같은 노동자의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노동 관련법이 배달플랫폼이나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개인사업자 신분인 특수고용노동자(이른바 ‘디지털특고’)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구 팀장은 “라이더들에게 코로나로 인한 가장 큰 공포는 일을 못 하는 것이다. 일한 만큼 버는 개인사업자라 당장 일을 못 하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안전망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은 서울서부고용노동지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사진) 이들은 서울만이 아닌 전국 단위 법내 노조를 만들기 위해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했는데, 고용노동부가 출석조사를 요구했다. 라이더유니온은 “노조 설립은 허가가 아닌 신고”라며 맞섰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라이더유니온 사무실에서 배달 노동의 제도화를 위해 그동안 해온 일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AI 배차? 기술적 옷 입은 지휘감독
이날 홀로 사무실을 지킨 구 팀장은 지난해 5월 라이더유니온 공식 출범 뒤 1년3개월의 활동을 돌아봤다. ‘요기요 배달 노동자 근로자성 인정 판정’(2019년 10월), ‘배달플랫폼 노동자 첫 합법노조 서울 인가’(2019년 11월) 등 굵직한 성과가 있었다.
“(플랫폼사들에) 저희가 주로 지적했던 게, 불법적 지휘감독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배달의민족(배민)은 라이더들의 무단 지각·조퇴·결근에 벌금을 물렸고, 나머지 업체들도 출퇴근 보고, 식사 시간 보고를 하게 했죠. 출근이 늦으면 콜을 제대로 주지 않는 등 페널티를 줬고요. 계약은 개인사업자로 하고, 일은 근로자처럼 시킨 겁니다.”(구교현 팀장)
요기요의 배달 노동자 5명에 대한 근로자성이 인정된 이후 배민은 즉각 벌금제를 없앴다. 하지만 지휘감독 시스템은 진화하고 있다. 구 팀장은 “플랫폼사들이 과거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 감시를 했다면, 지금은 기술적 진화를 통해 내적 감시를 한다”며 “에이아이(AI) 배차 같은 기술적 옷을 입혀서 라이더 스스로 ‘내가 언제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니 따라야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지휘감독이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이 양질의 일자리가 되려면 라이더들의 ‘법적 지위 향상’ ‘안전 배달료’ ‘보험료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라이더유니온은 안전 배달료를 포함해 민간보험료를 현실화하는 내용을 담은 ‘라이더안전보장법’(가칭) 입법 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4천원 이상의 안전배달료 도입’도 주장한다. 구 팀장은 “지금 기본 배달료가 평균 3천원인데, 이 금액은 10년 전에도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가가 오르고, 음식값이 오르고, 심지어 최저임금도 10년 사이 2배 올랐는데 기본 배달료만 그대로”라며 “배달은 공짜란 인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누군가의 노동력에 마땅한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