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질판위 지난달 말 “업무관련성 배제할 수 없어” 판정
복지공단부터 법원까지 7번 불승인 뒤 8번째 도전에 성공
한혜경(오른쪽)씨와 한씨 어머니인 김시녀씨.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삼성전자 엘시디(LCD)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린 사실을 최초로 제보하고 15년째 싸워 온 한혜경씨가 8번째 도전 끝에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는 5일 삼성전자 엘시디사업부 공장에서 6년간 생산직 노동자로 일한 뒤 뇌종양 판정을 받고 투병해 온 한혜경(41)씨가 신청한 요양급여 신청이 지난달 30일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승인됐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판정서에서 한씨가 현재는 삼성디스플레이㈜로 바뀐 엘시디 공장에서 17살의 어린 나이에 오퍼레이터로 근무하면서 납·주석·플럭스·이소프로필알콜 등 유해요인에 노출된 사실 등을 들어 “최근의 뇌종양 판례 및 판정위원회에서 승인된 유사 질병 사례를 고려할 때 업무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1990년대 사업장 안전관리 기준과 안전 인식이 현재보다 떨어져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았거나 안전조처가 미흡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점, 2002년 이전의 사업장에 대한 조사가 충분치 않은 점 등도 산재 승인 요인으로 판단했다.
한씨는 1995년 11월부터 5년9개월 동안 삼성전자 엘시디사업부(현재는 삼성디스플레이주식회사) 모듈과에서 납과 유기용제 등에 노출된 채 생산직으로 일했다. 재직 중에도 생리가 끊기는 등의 증상을 겪다 2001년 7월 퇴사한 지 4년 뒤인 2005년 뇌종양 판단을 받았다. 수술로 종양은 제거했으나 후유증으로 시각·보행·언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한씨는 2008년 삼성반도체 백혈병 투쟁을 벌이던 반올림에 최초 뇌종양 사례 제보를 한 뒤 이듬해 3월 산재를 신청했으나 질병판정위원회에선 불승인 결정이 났다. 이어 근로복지공단 본부 심사와 노동부 재심사를 거쳐 2015년 1월 대법원까지 3급심을 모두 거쳤으나 결론은 같았다. 다시 지난해 10월 산재를 재신청해 근로복지공단 용인지사에선 불승인 결정이 났으나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이번에 결정을 뒤집고 한씨 손을 들어줬다. 발병 15년 만의 일이고, 첫 산재 신청을 한 지 10년째 8번째 도전에 성공한 것이다.
한씨는 “산재 인정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다”며 “앞으로는 직장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병에 들거나 하면 기관에서 신속하게 처리해 저같은 사람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내놨다. 반올림은 오는 1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한씨의 산재인정을 축하하는 음악회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를 열기로 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