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손잡고,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둘러싼 매듭 하나가 풀렸다. 그동안 사회적 대화를 통한 관련법 개정 문제가 해결돼야 비준할 수 있다던 정부가 22일 ‘비준·입법 동시 추진’으로 선회함으로써 비준이 먼저냐 법 개정이 먼저냐의 줄다리기는 끝났다. 하지만 관련법 개정을 놓고 노사 단체의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고, 국회 통과에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국회에서 비준동의안을 논의하려면 국내법의 상충 여부를 논의하게 될 것인데, 국내법의 정비 방향이나 내용에 아무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는 논의 진행이 안 된다. (비준과 입법 절차가) 같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금부터는 정부가 주도해 비준동의안과 관련법 개정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논의는 법 개정을 둘러싼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한국이 비준하지 않은 핵심협약 4개 가운데 2개(87호·98호)가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것인데, 해고자·실업자·특수고용노동자와 공무원, 교원의 노조활동을 가로막는 노동조합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등에 이와 충돌하는 내용이 많은 탓이다. 비준을 거친 국제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는데(헌법 6조 1항), 국내법을 그대로 둔 채 핵심협약을 비준하면 사회적 혼란이 일어날 수 있어 관련법부터 개정해야 한다는 게 정부 논리였다.
논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사회적 대화 기구인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는 올해 4월까지 42차례 회의를 거듭했다. 하지만 노동자의 단결권 등을 보장하려면 기업의 방어권도 보장해야 한다는 경영계의 요구에 막혀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4월 두차례에 걸쳐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의 ‘공익위원안’을 내놨지만 노사 양쪽의 반발을 샀다. 노사 부대표급 등이 참여한 경사노위 운영위원회에서도 합의를 시도했지만 이마저 실패했다.
결국 사회적 합의가 뜻대로 되지 않자 정부가 비준 관련 방침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노동기구가 선 비준을 제안하고, 유럽연합(EU)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의 핵심협약 비준 약속을 지키라며 분쟁해결절차를 밟고 있는 등 정부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상황도 기류 변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핵심협약 비준동의안과 관련법 개정안을 동시에 국회에 보낸다 해도 처리는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경영계가 △파업 시 대체근로 무제한 허용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등 경사노위 합의를 불발시킨 요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날 “단결권만 확대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과 사용자 쪽의 우려가 매우 높다. 공익위원안은 경사노위 차원의 합의안이 아닐 뿐만 아니라, 노동계 입장에 편향된 안”이라며 공세를 예고했다. 반면 경사노위에 참여해온 한국노총은 “그간 사용자 단체가 주장해온 파업 중 대체근로 허용 등 핵심협약 비준과 관계없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같은 입장을 확인하며 “(1차 경사노위 공익위원안에 근거해) 국회에 제출된 기존 법안을 폐기하면 민주노총은 개정 방안 마련을 위한 협의에 적극 응할 수 있다”고 했다.
더구나 올해 정기국회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열려 각 당이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법 개정이 총선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두고 계산기만 두드릴 가능성도 있다.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핵심협약 비준에 부정적이다.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의 김학용 위원장(자유한국당)은 이날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핵심협약의 내용은 우리나라 노사관계 토양에서 쉽게 판단하거나 청산하기 어려운 내용이 대부분이다. ’경제 폭망’ 문재인 정부가 이렇게 가볍게 움직일 사안이 아니다”라며 반대 뜻을 거칠게 드러냈다. 같은 당 소속 환노위원들도 기자회견을 열어 “악화되는 경제상황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강성귀족노조의 횡포 속에서 협약 비준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충분한 사회적 합의도 없이 정부는 국제사회 압박을 핑계로 무리한 비준 절차를 진행하려고 한다”며 “핵심협약 비준은 보완입법이 선행되는 ‘선 입법 후 비준’의 절차로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조혜정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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