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 반올림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2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위험의 위주화 금지 약속을 파기하는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을 규탄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행령 입법예고안의 도급승인 대상 범위 재검토와 건설기계 원청책임 강화 등을 요구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앞으로 사업장에서 농도 1% 이상의 황산·불산·질산·염산을 취급하는 설비를 개조·분해·해체·철거하는 작업과 해당 설비의 내부 작업을 하청을 주기 위해선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고용부는 22일 이런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노동계는 이날 발표된 시행령이 법안 개정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박화진 고용부 노동정책실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해 내년 1월16일 시행되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에 따른 하위법령 개정안을 공개했다. 우선 무분별한 하청으로 인한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사내하청의 범위를 ‘농도 1% 이상의 황산·불산·질산·염산 취급 설비를 개조·분해·해체·철거하는 작업’으로 규정했다. 개정법이 산재예방 의무를 부과한 대표이사나 가맹본부·발주자의 범위는 ‘제조업 등은 상시 노동자 500명 이상인 회사, 건설업은 시공능력평가액 순위 1000대 안에 드는 회사’로 정했다. 가맹점 수가 200곳 이상인 외식업과 편의점업의 가맹본부도 설비와 기계 공급 관련 안전보건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행하도록 했다.
또한 스마트폰 배달 앱을 운영하는 관리자에게 배달 노동자의 운전면허와 헬멧 등 보호구 보유 여부를 확인하도록 해 안전운행을 위한 조치 의무를 부과했다. 건설 현장 사고 때 원청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임대 기계의 종류는 타워크레인을 비롯해 건설용 리프트, 큰 말뚝을 박는 항타기, 말뚝을 뽑는 항발기 등 4가지를 선정했다. 박 실장은 “건설공사 도급인이 대여자와 합동으로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작업계획서 작성·이행 여부를 확인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이날 청와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하위 법령 개정안이 산재를 줄이는 데 턱없이 부족한 안이라고 비판했다. 고 김용균시민대책위, 민주노총, 반올림, 노동건강연대 등은 우선 지난해 산안법 전면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촉발한 서부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씨가 일하던 전기사업 설비의 운전 및 설비의 점검·정비 업무, 긴급 복구 업무가 정부의 도급 승인 대상에서 빠졌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승인 없이 다른 회사 사업장에 가서 일할 수 있는 사내하청의 범위가 여전히 넓다는 지적이다. 개정법은 각종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으로 승인 대상 업무를 폭넓게 잡은 반면, 시행령은 관련 물질을 취급하는 설비를 개조·분해·해체하는 등의 업무로 축소한 것도 입법 취지와 어긋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또 원청의 안전 책임을 강화한 건설 기계의 종류에도 굴착기, 트럭류, 이동식 크레인, 지게차 등 사고를 많이 일으키는 것들이 빠져 실효성이 의심된다고 노동계는 지적했다. 중대재해가 일어난 뒤 내려지는 작업중지를 풀기 위해 회사 쪽이 해제를 신청하면 근로감독관이 현장을 확인해 4일 안에 작업중지해제심의위원회를 열어 해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 개정안도 “졸속 심의와 해제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를 산다. 이들은 “노조 추천 전문가의 위원회 참여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