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질이 폐업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20대 청년 3인방이 ‘책방을 계승하겠다’며 은종복 대표를 찾아왔다. 왼쪽부터 전범선씨, 장경수씨, 은종복 풀무질 대표, 고한준씨. 사진 은종복 대표 제공
폐업 위기에 놓였던 성균관대 앞 사회과학서점 ‘풀무질’을 인수할 사람이 나타났다.
18일 은종복(54) 풀무질 대표는 “책방이 어렵다는 소식이 언론보도로 알려진 뒤, 책방을 계승하겠다는 인수자가 나왔다”며 “이들이 올해 6월12일부터 풀무질을 이어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은 대표는 “새로운 인수자들은 인문학을 사랑하고 사회과학서점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누구보다 커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은 대표는 6월11일 풀무질 지킴이이자 책방 대표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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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질을 계승할 이들은 전범선(28), 고한준(27), 장경수(29)씨 등 ‘20대 청년 3인방’이다. 록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의 보컬인 전씨는 독립출판사 ‘두루미출판사’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전씨는 7년 지기 친구인 고씨는 함께 지난 11월께 일제강점기 여성 사회주의 운동가 허정숙의 글을 엮어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를 펴냈다. 장씨는 미디어 아트 관련 강의를 하며 시를 쓴다.
처음 풀무질 인수를 결심한 사람은 전씨였다. 전씨는 “영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책방문화를 익숙하게 즐겼고 한편으로 동경했다”며
“한국에서 그 문화를 재현하려는 구상을 하던 찰나 <한겨레> 보도를 보고 풀무질 소식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전씨는 “‘10원 한푼 없어도 풀무질 정신을 계승할 사람을 원한다’던 은 대표의 말에 이분이 나를 찾는 것 같다는 확신 아닌 확신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전씨는 출판사 동업자인 고씨와 지인 장씨에게 풀무질을 인수하자고 제안했다.
사회과학서점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며 아쉬움과 갈증을 느끼던 고씨와 장씨는 전씨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고씨는 “학부생 때 모교 앞 사회과학서점 ‘인서점’이 사실상 폐업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이 컸다”며 “여건이 될 때 사회과학서점을 지키는 일을 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전씨가 제안을 해왔다”고 말했다. 장씨 또한 “풀무질에 가보고 이런 공간이 사라지지 않게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뜻이 모인 이들은 지난 10일 무작정 은 대표가 있는 풀무질을 찾아갔고, 은 대표와 청년 3인방은 일주일간 논의를 거친 뒤 인수를 결정했다.
이들은 풀무질을 역사와 철학이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으로 계승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고씨는 “풀무질을 처음 찾아간 날, 구하기 힘든 역사, 철학책들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매료되어 버렸다”며 “앞으로도 풀무질을 그런 인문학적 갈증을 채워주는 공간으로 지속시키려 한다”고 강조했다. 전씨는 “기존 풀무질에서 해왔던 것처럼 독서모임을 활성화하고 싶다”며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함께 환경·사상·여성 등에 대해 읽고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씨는 또 “한국 사회의 사상적·역사적 단절을 극복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풀무질을 통해 그런 극복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은 대표는 새로운 인수자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장사가 잘되는 책방이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해 미안하고 어려운 책방을 받아준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책방을 인수하는 일을 두고는 “한마디로 자식을 결혼시키는 심정”이라며 “아이가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처럼 책방이 잘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풀무질을 물려준 뒤 제주도로 떠날 계획이라는 은 대표는 작은 평수여도 좋으니 여력이 된다면 그곳에서도 인문학 책방을 열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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