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4일 저녁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문송면 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와 반올림 농성 1천일 맞이 삼성 포위행동 행사가 열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국에서 해마다 2000명가량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기본 원인은 노동 현장에 있다. 안전장치나 조처가 미흡해서다. 전문가들은 산업안전보건 행정이 우선 개혁될 필요가 있다고 두루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지난 9월 활동을 마무리하며 낸 보고서에서 “(근로감독관들이) 재해조사 시 법 위반만 지적해 재해조사와 감독 간 차별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심층적·구조적 원인을 종합 규명하는 일은 소홀히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개혁위 보고서를 작성한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는 “단기적으론 산업안전보건 담당 감독관의 전문성을 확보해야겠지만, 영국처럼 전문 행정조직인 산업안전보건청을 설치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노동자 참여도 확대돼야 한다. 1981년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1990년 꼭 한차례 전부 개정됐다. 온도계 공장에서 일했던 15살 문송면의 수은 중독과, 915명이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직업병 판정을 받고 231명이 사망한 원진레이온 참사를 거쳐 1988년 노동자 투쟁이 이룬 성과다. 당시 법은 산업안전에 대한 정부의 책임과 의무를 규정하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하도록 했다. 그 뒤 근골격계 질환, 청소 노동자의 ‘씻을 권리’, 감정노동 문제 등이 제기됐고 모두 제도화됐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산재 예방에 노동자 참여가 꼭 필요하지만, 산재가 집중된 소규모 사업장이나 하청, 특수고용 노동자는 아직도 산업안전보건위 참여 대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안전이 첨예한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난 7월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가 연 ‘노동안전보건과제 대토론회’에서 백도명 서울대 교수(환경보건학)는 “2000년대 초반 이후 산재사망률이 급격히 감소하지만 같은 기간 자살을 제외한 외부 원인 사망률과 비교하면 그 변화 속도가 같다. 결과적으로 산재에서 자체적으로 사망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백 교수는 “비용을 줄이려는 경향이 산재의 근본 원인”이라며 “결국 산재는 누가 돈을 쓰고 책임을 질 것이냐 같은 이해관계의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명선 실장도 “아직도 일어나는 재래형 사고들은 다단계 하청구조 같은 노동 조건과 연결돼 있지만 전문가라는 이들은 주로 기술적 접근만 한다”며 “우리도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을 도입하는 등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재해 사망으로 자본이 입는 손실’보다 ‘안전조치 강화로 인한 손해’가 더 큰, ‘생명<비용’의 구조를 바꿔야 궁극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함인선 한양대 교수(건축학)는 “산재는 ‘싸구려 공사’의 사전 징후로 건물을 이용하는 이들도 위험에 빠뜨린다”며 “안전 비용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그 피해를 결국 일반 국민이 본다”고 말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야말로 안전보장이라는, 새로운 ‘안보’ 개념을 구현하기 위해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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