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죽음, 산업재해] ③ 참여해야 안전하다
독일 건설재해보험조합 기술감독관이 건설현장에 감독을 나가 현장 관리자, 노동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독일 건설재해보험조합 제공
노사 공동 자치로 운영
산재 예방·재활·보상 업무
정부는 보편적 지침만 주고
구체적 안전 수칙은 조합이 결정 보상여부도 조합 전권
노동자가 산재 입증하려
회사와 싸우지 않아도 돼
사용자도 고의 아니면
민사상 책임 면제 재해보험조합은 독일 산업발달 과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1880년대 독일 비스마르크 정권이 사회보험 체계를 만들자 업종별 사용자 단체가 국가의 간섭을 피하려고 재해보험조합을 구성해 재해보험 운영권을 얻어낸 것이 그 시초다. 정부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만든 기구지만, 1951년부터 노동자도 동등하게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공공성이 강화되고, 안전기준도 촘촘해졌다. 이는 독일 노사협력의 뿌리가 깊어 가능했다. 독일은 사업장 안전 문제를 ‘사업장평의회’에서 노사가 공동 결정하도록 법제화했고, 상시적인 노사 협력이 이뤄진다. 그 결과 독일은 현재 10만명당 산재 사고 사망자가 한명이 채 안 된다. 네덜란드·스웨덴·영국과 더불어 유럽의 대표적 산업안전 선진국으로 꼽힌다.
지난 11월2일 독일 베를린 시내의 한 건설현장에서 안 전관리자(오른쪽)가 안전설비 관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베를린/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조합 기술감독관 3천명
주정부·회사쪽과 공사장 점검
계획·설계 단계부터 밀착
산업표준 바꾸고 설비 추천 처벌보다 예방 주력
뿌리 깊은 노사 협력 바탕
“현장 가장 잘 아는 노동자
참여 보장해 재해율 낮춰”
10만명당 산재사망 1명 아래 재해보험조합은 산재 보상 처리뿐 아니라 사고 원인을 분석해 안전기준을 제·개정하기도 한다. 안전기준은 계속 변경되는데, 지난 10월 양쪽 기둥(세로대)이 평행인 사다리가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나 사다리의 윗단보다 아랫단을 넓게 생산하도록 산업표준이 바뀌었다. 규정이 이렇게 ‘현장 밀착형’으로 세밀해진 배경에는 재해보험조합을 중심으로 한 노사 양쪽의 경험이 녹아 있다. 현장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해 재해율을 낮춘 것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독일 노사의 적극적 대응은 산재를 대하는 사회인식까지 바꾸었다. 메르츠 부국장은 “독일에서는 사고가 나더라도 개별 작업자의 태도를 문제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건설업 산재 사고 원인을 추적해보면 노동자가 영향을 줄 수 없는 계획·설계 단계부터 문제인 경우가 많다”며 “예방 조처는 강구하지 않고, 안전모 착용 등만 강조하면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건설업 산재 사망사고의 28%는 계획, 35%는 설계 단계에 원인이 있다고 추산하는 국제노동기구의 연구 결과는 독일의 대응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증명한다. 베를린/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